Teleoulos
사도행전 9장 23-25절 본문
사도행전 9장 23-25절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중생한 자의 참된 표본답게 사울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한다. 그는 복음을 선포하면 할수록 복음의 더 깊은 은혜가운데 빠져 힘을 얻는 사람이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그 이후의 사건을 언급한다. 23절의 ‘여러 날’은 언뜻 보기에 며칠 안 되는 시기로 보이지만 갈 1:15-18을 참고할 때 대략 3년의 시간을 뜻한다. 그리고 이 3년 동안 사울은 다메섹이 있던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에 있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3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그가 기도하며 성경을 깊이 연구했던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그는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3년이라는 시간동안 더욱더 준비되어서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것이다. 전보다 더 충만해지고, 전보다 더 준비된 자로써 다메섹에서 그의 모습은 어떠했겠는가? 아마 바로 앞에 있던 그의 모습보다 훨씬 더 뜨겁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23절에 그간의 그의 모습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마 복음을 전하는 그의 모습이 앞 절에 이어 계속해서 동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를 죽이려고 한다. 일전에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히 여겼던 그가, 이제 스데반과 같이 순교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들의 계교가 얼마나 치밀했는지,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풀어 성문 안과 밖으로 살해계획을 주도해나갔다. 그러나 아직은 그의 순교의 때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계교를 알려주실 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을 통해 성 밖으로 도주할 수 있게끔 인도해주신다.
오늘의 이 말씀가운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2가지이다.
먼저, 우리가 준비되면 준비될수록 사탄은 그런 우리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울은 3년이란 시간동안 하나님과의 충분한 교제를 쌓아갔다. 앞서 20-22절을 보았을 때 그가 누구보다 뜨겁게 복음전하기를 우선시했음에도 돌연 아라비아로 떠난 것은 사울 개인의 의사라기보다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울이란 사람을 자신의 그릇으로 다지는 데 있어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보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뜻에 반하려 했던 사탄은 그 당시 다메섹을 지배하고 있던 아레다 왕의 방백들, 유대인들을 이용해 사울을 죽이려 한 것이다. 사탄은 오늘의 우리를 노리고 있다. 왜? 하루하루 더 그리스도를 닮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의 자녀다운 모습을 갖추면 갖출수록 사탄은 그런 우리들을 가만히 두려하지 않을 것이다. 삶이 마냥 편하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지루하기까지 한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모습이 그리스도를 더 닮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를 방해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현상일 수도 있다. 어차피 놔둬도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아는 사탄이기 때문에 방치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 삶에서 평안하고 아무런 일이 없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평강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기에 사탄이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탄에게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재앙이고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두 번째, 하나님께서는 진정 그리스도인들을 그냥 두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탄은 준비된 자들을 그냥 놔두려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리스도와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할 것이다. 심지어 사울에게 했던 것처럼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마냥 사탄에 의해 당하게 두시지는 않는다. 정말 큰 섭리가운데 욥과 같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이상, 본문의 사울과 같이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 사울이 3년 동안 다메섹을 떠나있으면서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일 것은 어떻게 알았겠는가? 충분한 정보가 없을 수도 있는 상황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유대인들의 계교를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통해 피할 길을 열어주셨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두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신다. 특별히 자신을 위해 아등바등하고, 더 주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 예수님도 동일하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많은 표적과 기사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전할수록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을 반항하고 죽이려 했다. 사탄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은 필살기를 날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사탄의 머리는 거기까지였다. 사탄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으로, 자신이 승리한 것으로 착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셨다. 그를 다시 살리셨다. 그로 인해 사탄은 완전히 패망하게 되었고, 앞으로 예수님의 재림 시 완전히 소멸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이미 바울을 통해 드러내셨듯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드러내셨듯이, 우리 또한 이 땅 가운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탄의 음모를 당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 믿는다고 무조건 잘 산다? 근심걱정 없다? 대성한다? 명확하게 말해서 그것은 다 뻥이다.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이상, 사탄의 방해는 필연적으로 받게 되어 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사탄의 공작이 없다? 장담코 그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필연적으로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울에게 피할 길을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듯이 우리 또한 이 세상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며 재림 시 결국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우리들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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