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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36-43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9장 36-43절

텔레울로스 2018. 2. 28. 09:52

사도행전 9장 36-43절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오늘의 본문은 바로 전에 있던 병 고침 사건에 이어, 죽은 자를 살리는 회복의 사건 두 번째 이야기를 다룬다. 바울의 복음전파를 기점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가던 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당시 욥바라는 항구 도시에 선행과 구제 사역을 열심히 감당하고 있던 여제자가 있었다(신약에 들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이렇게 제자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인 것을 보면 그녀의 사역이 결코 작지않았음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37절에 그때에라는 표현을 보면 한창 사역 중에 갑작스럽게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그곳에 있던 제자들이 그녀의 시체를 다락에 누였다. 그리고 베드로가 욥바에서 가까운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두 사람을 보내 곧장 자신들에게 와달라고 간구했다. 그들은 아마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욥바에 있는 다락방에 올라갔다. 그곳에 가보니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많은 과부들이 그녀에게 받은 구제의 물품들을 안고 애도하고 있었다. 이에 베드로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내보내고 기도한 후, 그녀를 살렸다. 그리고 다시금 사람들을 불러 그녀의 회복을 보이니,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자들이 주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의 이 사건을 두고 우리는 2가지를 집중해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제자 베드로의 모습,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베드로는 욥바에서 온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먼저 일어나(헬라어:아니스테미)” 그들과 함께 갔다. 그리고 기도한 후 성령의 충만한 상태에서 시체를 향해 일어나(아니스테미)”라고 명령했을 때, 시체가 명령에 순종하여 일어나 앉자(아나카디조)” 그는 최종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켰다(아니스테미).”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시 그 자리에 불러 모았다. 이 모든 과정은 ”일어나다"라는 단어로 연관되어진다. 그가 시체를 회복시키기 전, 자신이 먼저 일어났다. 사실 39절에서 굳이 베드로가 일어났다는 표현을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 단어가 없어도 문맥은 아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앞 사건을 비교해볼 때). 그럼에도 누가가 이 사건을 기록할 때 이 단어를 썼다는 것은 베드로가 먼저 일어나다비다에게 일어나라고 명령/선포할 수 있었고, 결국 그녀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즉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복음을 온전히 받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먼저 깨어 있어야만, 그 누군가를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결코 죽은 자를 살릴 수 없다. 살아 있는 자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이 얼마나 당연하면서도 우리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원리인가? 이에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지금 나의 상태는 어떠한가? 누군가를 주님께로 인도할 만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고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닌가? 본문은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큰 통찰력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그 가운데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베드로가 시체 앞에서 우선적으로 한 것은 기도이다. 그리고 시체를 향해 선포한 후, “손을 내밀어일으킨다. 그의 기도의 모습에서 성령 하나님이 드러나며, 선포하는 모습에서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손을 내밀어 직접 일으켰다는 것에서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까지, 삼위 하나님의 경륜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가? 이는 인간의 창조에서 시작해 구원하시는 모습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다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다비다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베드로는 그제서야 사람들을 불러 그의 모습을 확인시킴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다비다의 부활사건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적인 사역의 모습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온전히 회복된 자를 통해서 불신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2가지 핵심 내용을 정리해보자. 우리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우선적으로 우리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자신이 깨어 있지 못했다면 은혜의 방편(말씀, 성례, 기도)을 통해 우선적으로 회복되어야 하며, 그래도 은혜가운데 바로 서 있다면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런 자신을 통해 아직 죽어있는 영혼들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을 소망해야 할 것이다. 결국 베드로의 두 사건, 병 고침과 부활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신 주님, 오늘도 주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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