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어디까지 (부제: 적절한 선?!) 본문
우리 교구에는 현재 82세이신 노 여집사님께서 계시다.
집사님은 작지만 도심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계시다.
자녀들은 (몇 명인지 모른다)모두 서울(수도권쪽)에서 살고 있다 하셨다.
담당 목자분을 통해 들어보니, 어렸을 때 자녀들을 고모님 댁에 맡겨서
(왜 맡겼는지 자세한 이유까진 못 들었던 것 같다)
어머니이신 집사님과 자녀들 사이의 유대가 거의 없다고 하신다.
그래,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몇일 전, 노 집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만나자고.
만나기 전부터 뜨끔했던 것은 현재 목자분에 대해 마음이 닫혀 있었다는 것이다.
요는, 목사분이 자기를 조금 서운하게 했다는 것.
다음 날 목자분들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 노 집사님께서 몸이 안 좋아 입원하셨다 퇴원하셨다.
그런데 자녀들도 멀리 있고, 홀로 어려우니 목자집사님의 도움을 받아 퇴원한 것이었다.
그런데 (목자분이)일주일 후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신경도 안썼다며 불편함을 토로하셨다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목자분은 나름 이 노 집사님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알기에
병간호 서비스부터 시작해, 보험관련 여러 도움을 드리려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지원이 잘 되지 않자 되레 목자분께 불평을 하셨다고 한다.
으흠..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은 '자녀들은 뭐하는데?'였다.
물론 자녀들이 멀리 있는 것도 알고 있다.또 어떠한 사정이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부모 챙기는 것을 자녀에게 전연 책임지라 하지 않고 목자에게 일임한다?
충분히 예상되는 것 또 하나는 아마 노 집사님은 자신이 입원한 사실조차
자녀들에게 결코 말하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이다.
이로 이 지점이다.
그래서, 목자는 어디까지 이 노 집사님을 챙겨야 하는가?
물론 성경은 말한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 사랑의 기준이 예수께 있다는 것을.
그것만 두고 본다면 이미 게임은 끝이다. 선이 뭐가 있겠는가? 다함없는 사랑인 것을.
그러나, 그러나 적어도 도리라는 것은 있지 않겠는가?
이 도리는 먼저 노집사님의 자녀들에게 있지만, 동시에 노 집사님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1) 어쨌든 자녀라 한다면 부모의 현황을 명확히 아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게 보호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를 알게 하기 싫다고 전연 나누지 않은 것은 노 집사님의 잘못된 판단이다.
엄밀히 말해, 자녀들이 알게 됨에 대한 미안함과 불편함을 자신이 가져가기 싫은 것 뿐이다.
더불어 자녀들 또한 마찬가지다.
2) 사실 부모가 말 안한 거지 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만 상황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빨리 이러한 현황을 알고 자녀들이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래서, 담당 교역자로서 고민이다.
과연 어디까지 목자 집사님께 요청을 해야 하는 건지,
어느 정도 선에서 권면을 해야 하는지.
물론 당장에 드는 생각은 이러하다.
집사님의 자발적인 감동껏 섬기시라.
그것이 본인도 시험에 들지 않고, 마음 닿는대로 섬길 수 있는 적정 선이 아니겠는가?
교회.. 로 살아간다는 건 늘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목회자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리라.
오늘도 겸손히 하늘의 지혜와 영적 깨달음을 구할 뿐이다.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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