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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장 19-26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1장 19-26절

텔레울로스 2018. 3. 9. 10:21

사도행전 11장 19-26절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이방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고넬료 사건이 마무리 되고, 곧 이어 이방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19절에 그때에라는 말은 스데반의 죽음 직후를 상기시킨다(8:1b).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 뿐 아니라 안디옥에서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다고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가운데 구브로와 구레네의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유대인 이외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는 1차 독자가 헬라인이라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어떻게 복음이 전해졌는지 흥미로웠을 것으로 보인다.) 21절은 복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게 되는 원리가 그려지고 있다. 보통 성경에서 이라는 단어는 능력을 뜻하는데, 주의 손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함께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주의 손이 그들의 손을 잡고 주님께로 인도한 것이다. 안디옥의 이 소식을 듣게 된 예루살렘 교회는 격려와 확인 차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한다. 그곳에 도착한 바나바는 듣기만 했던 중생한 이방인을 보고 기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더 힘을 내어 복음을 전했다. 이에 많은 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모이게 되었다.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할 이때에,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가 필요했던 것처럼 바나바에게도 함께 그 불길에 기름을 지필 동역자가 필요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는 고향에 피신해 있던 사울을 찾아가 동역을 요청한다. 이에 사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 도착해 연약한 믿음에 있던 자들을 훈련시킴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교육하고 그렇게 제자들로 양육했다. 이에 세상은 제자들의 행실을 보며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컫기 시작한다.

 

이방선교가 시작된 이 시점에서, 고넬료의 이야기는 교회가 아닌 개인의 집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본문은 개인이 아닌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히 그 교회에 이방 지역에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안디옥 교회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우리가 교훈 삼을 수 있는 모습은 무엇인가? 이에 3가지 모습에 대해 나누려 한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모습, 권면을 받는 모습, 교육을 받는 모습이다.
먼저,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안디옥에서의 사역은 당연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주 예수를 전파했다. 앞서 스데반의 설교를 봤을 때, 그는 다른 어떤 이야기들을 덧붙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삶 그 자체를 두고 그대로 전했을 뿐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안디옥에서도 동일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에 반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회에서 전하는 것이 순수하게 주 예수가 맞는 것인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함으로 교회 떠날 것을 두려워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아할만한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할지 본질 그 외의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복음을 듣게 된 사람들이 혹여 마음이 불편해 교회를 떠난다는 사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교회가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모습이다.
두 번째로 우리는 바나바를 통해 사람들이 격려와 권면을 받는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란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교인들이 복음 안에서 이탈하지 않고 매일매일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권면하는 곳이다. 한 주 동안 피폐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는가? 목회자들 또한 하루하루 말씀과 기도로 전무하지 아니하면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것이 이 세대의 현실이기에 교회는 계속해서 성도들이 은혜를 공급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뿐 아니라, 그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일상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권면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그곳에 있던 연약한 자들을 가르쳤다.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이제 막 신앙을 갖게 된, 복음을 알게 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던 것이다. 이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그들을 말씀으로 훈련시킨다. 훈련된 그들에 대한 누가의 기록은 큰 무리에서 제자들로 바뀌는 것을 26절에서 볼 수 있다. 그랬을 때, 그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다.

 

3가지의 모습을 갖춘 교회는 결국 그리스도인들을 낳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올바른 모습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교회인 것이다. 교회란 어떤 곳인가? 우선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곳이며, 성도들을 말씀 가운데 권면하고,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양육하는 곳.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지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리스도부터 시작되어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지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이자,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예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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