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예수를 만나다 (Part 2) 본문
하루하루 은혜가 필요한 자이기에, 오늘도 부분적이게나마 누리게 된 지식&감동을 짧막하게 나눈다.
" 사역은 이렇게 "
본 단락의 본문은 요 11장으로, 어쩌면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스토리 중 하나인 나사로의 부활사건이다. 나사로의 소식을 듣고 마르다&마리아의 집에 도착한 예수님. 아이러니하게도 두 자매가 동일한 말을 하는데, 그에 따른 예수님의 반응이 다소(?!) 다르다.
마르다가 말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 이에 따른 예수님의 반응은 이렇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해결책과 더불어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설명하셨다. 반면에 마리아가 예수님께 말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32)." 이에 따른 예수님의 반응은?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 예수게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공감해주신다.
왜 이런 상반된 반응이 있는 걸까? 각 사람에 따라 맞는 사역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마르다에게는 신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더 드러내신 것이며, 마리아에게는 인간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더 드러내신 것이다. 마르다에게는 진리의 사역을, 그리고 마리아에게는 눈물의 사역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2가지를 볼 수 있었다.
1)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셨다.
2) 예수님은 각 사람에 맞는 사역을 해나가셨다.
요 11장은 여기에서 마무리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이 전반전이라면 후반전에서도 또 다른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볼 수 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요 11:38의 영어번역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비통히 여기셨다는 이 표현은 본래 그리스어 단어가 포함되어 '분노로 고함을 지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현재 친구이자 가족인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죽음을 향해 분노하고 계시는 것이다. 물론 인간적인 관점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세상을 뒤집으면 될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문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해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결론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본래 하나님의 계획에 적극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 지극히 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이 모습은 다시금 전반부의 분위기와 하나가 되어, 어떻게 사역을 하고 계시는 지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대해, 불의에 대해, 죄에 대해 분노하고 계신다.
: 나사로의 죽음 사건은 무엇보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가장 돋보이게 보여주고 있지만, 사역자인 나에게는 아무래도 어떻게 살아가셨는지를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예수님의 사역의 모습 3가지. ➊각 사람에 맞는 사역(진리&눈물) = 과연 나는 각 사람에게 정말 맞게, 그들을 잘 알고,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분명히 알고 사역을 해나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며, ➋분노의 사역 = 얼마나 이 세대에 대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며 거룩한 분노를 해나가는 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라기는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한 사람의 죄인이자 부름받은 목회자로써 예수님의 이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더 닮아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도 내게 주신 이 깨달음과 은혜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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