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예수를 만나다 (Part 3) 본문
"믿음은 뜬구름이 아닌, 이성의 끝자락을 넘는 영역"
이 장은 요한복음 20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을 알게 된 최초의 여인 마리아. 그녀는 왜 예수께서 다시 살아날 것을 아예 인지하지 못했을까?
톰 라이트는 자신의 책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에서 당시 사람들의 문화상을 말한다.
유대인들, 희랍인들, 로마인들 모두 개인의 육체가 부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희랍인들(이후 로마인들까지)은 인간의 몸을 포함해 모든 육체적인 것은 약하고 악한 것의 근원이며,
정신적인 것이 강하고 선한 것의 근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이란 육체로부터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육체의 부활을 기대하기는 커녕,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일로 여겼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유대인들은 물질 세계를 선한 창조의 일부로 보았고 어느 유대인은 부활도 믿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신이 역사의 중간에 어떤 개인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리라고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지구상에서 가장 적은 민족이었다.
신이란 완벽하게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이 그들의 신관이었다.
이처럼 라이트는 고대인들도 현대인들처럼 기적이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부활이란 보편적으로 믿을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상세히 설명한다.
본문에서 예수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마리아를 부르신다.
"마리아야"(이는 요 10:3-4의 말씀이 진짜임을 드러낸다.)
그때서야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믿음은 이성을 뛰어 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믿음은 외부로부터의 개입 혹은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이성을 넘어 예수가 찾아왔다.
사실 대다수 현대인들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믿음이 논리나 증거와 역비례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더 많은 사실과 확실성을 얻게 될 수록, 믿음의 필요성은 점점 더 떨어진다고 말이다.
그러나,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은 진실이 아닌 것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의 확실성이다.
따라서 설득력 있는 증거, 이성에 호소하는 증거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훌륭한 촉진제이다.'라고 말이다
왜 그런가?
기독교의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은 결국 참/거짓을 구별할 만한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참/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이성과 역비례가 아니라, 이성보다 더 무궁무진한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논리나 증거 위에, 아니 그것을 뛰어넘는 영역에 있는 것이다.
마리아 또한 예수를 만나지 전까지는 예수를 예수로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음을 보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인간은 예수의 개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혹 이 사건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면, 이미 예수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믿음은 불가능하다. 예수가 필요하다.
이러한 논리에 의해 믿음은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 팀 켈러는 마리아와 예수님의 만남을 통해 믿음의 영역을 소개한다.
그리고 마리아의 모습에서 이성의 무능과 한계를 지적한다
그때 치고 들어온 예수의 부르심은 이성을 넘어선 믿음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본문의 내용은 흔하디 흔하지만팀 켈러는 이것을 논리적으로,
특별히 보편적인 합리성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합리'라는 개념을 확장시킨 것이다.
아마 이러한 사고가 팀 켈러의 장점이자 강점인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나 또한 '인본주의'가 결국 모든 사고를 잠식시키는 이 때에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고를 확장시키는, 변증적인, 의도적인 대조를 통한 설명 방법과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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