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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나다 (Part 5)

텔레울로스 2021. 4. 13. 22:56

"두 대언자"


성경이 진짜라면, 이 명제는 참이다. “어딘가에 법정에 있고 그곳에 나를 위한 대언자가 존재한다.” 대언자란 누구인가? NIV성경의 번역을 따르자면, 법정에서 그저 감정적인 호소를 하거나 내가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내가 죄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자이다.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행하는 첫 번째 대언자는 바로 예수이다. “제가 한 일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제 그들을 내 안에서 받아 주십시오!” 예수가 죄의 책임을 지었기에 정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두 번째 대언자,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 번째 대언자가 했던 역할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대언자는 나를 위해 하나님께 말씀하신다면, 두 번째 대언자는 나를 위해 나에게 말씀하신다. 이에 대해 J. I. Packer는 성령의 사역을 조명등에 비유한다. 조명등의 역할은 밝히 비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빛으로 주변 건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역할은 첫 번째 대언자를 알게 해주는데, 단순히 알게 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에게 살아야 할 것을 촉구하신다. 그런 점에서 팀 켈러는 예수시대 당시,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을 쫓아다녔음에도 연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성령이 지금만큼 역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차라리 그때 예수님을 쫓아다녔어도 깨닫지 못한 제자보다, 비록 예수님을 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성령으로 인해 더 깊이 깨닫게 되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낫다고 말한다. 그만큼 두 번째 대언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과연 내게 주어진 이 두 대언자를 얼마나 누리고 있는가? 내게 이런 대언자들이 있음을 알고, 그에 따라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결국 이것이 관건이다. 하나의 예로, 이 세상의 많은 유혹과 사탄의 공격 속에 나는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 지 생각해볼 수 있겠다. 별 것 아닌, 작은 것에 쉽게 요동한다면 그것은 내 스스로가 이미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두 번째 대언자가 첫 번째 대언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듣지 않거나, 잊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번째 대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인가? 팀 켈러는 말한다. ‘인간에게 주신 은혜의 방편을 사용해라.’ 두 번째 대언자가 그 방편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 단락에서 느끼는 팀 켈러의 강점. 명료하면서도 풀어쓰는 개념정리이다. 자신만 아는, 허공에 뜬 표현으로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거나 의문을 갖게 하지 않는다. 의문을 갖게 될 때쯤 쭉~ 풀어주는 시원함이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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