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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만나다 (Part 6)

텔레울로스 2021. 4. 14. 08:39

"보다 깊은"


마 26:36~38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각 복음서에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실질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마태는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마가는 ‘심히 슬퍼하셨다(여기에서 사용된 단어는 무엇인가가 엄청난 놀라움 혹은 혼란을 야기하여 격려한 감정적 상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사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순교의 위인들보다 어쩌면 못해(?!)보이는 것 같다. 마지막까지 소망을 품고 순교하는 그들에 비해, 아직 십자가에 올라가지도 않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작아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 어떤 위대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가 맞이하는 이러한 종류의 죽음을 맛보지 못했다. 평생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받다가 나로 인함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끊어지고, 아니 오히려 진노를 받게 된다면 어떨까? 이도 부족하다. 팀 켈러는 행 17:28을 들어 하나님이 그분의 자비로운 능력,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능력을 거두어 가신다면 우리의 영혼이 그의 사랑과 임재를 위해 지어졌으므로 일종의 고통과 해체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표현한다. 빌레인은 자신의 마가복음 주석에서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사는 자인 예수가 자신이 떠맡은 죄에 대한 심판에 수반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라는 전망에 느끼는 공포다.’라고 말한다. 많은 학자들은 겟세마네에서의 ‘괴로움’을 두고 예수님께서 지옥을 미리 맛본 것이라 주석한다.

 

교리적인 표현을 가져오면, 예수님의 순종을 능동적/수동적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수동적 순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대속을 뜻한다면, 능동적 순종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 본이 되는 모습을 말한다. 즉, 예수님은 우리가 살았어야 하는 순종의 삶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한다. ‘…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그 잔을 들고 마시기 전에 완전히 알지 못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 그 잔을 들었을 때, 우리를 위한 그의 사랑은 더욱 무한히 놀랍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종을 더욱 무한히 완벽했다.’ 예수님의 순종이 수동적이기만 했던 게 아니라 능동적이었기에, 우리는 용서와 자유 뿐 아니라 사랑과 기쁨 또한 받게 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보여주신 것 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두 번째 대언자를 통해 주신다. 이것이 우리가 간과했던 첫 번째 대언자의 역할인 것이다. 바로 우리를 향한 ‘참 사랑’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본 단락에서 2가지를 곱씹어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맛보신 보다 깊은 의미의 죽음, 그리고 대속을 넘어 본이 되어주신 보다 깊은 의미의 순종. 이 2가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단어가 있다면, 바로 '사랑'일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랑하신 건가.. 여전히 사역자임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분명한 건 나에게 이런 사랑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사역자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바라기는.. 이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 그 심각한 죽음의 고통을 덮었듯이 내 안에 있는 앙금과 찝찝하게 겉도는 분노가 덮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도 그 사랑을 알고 경험하고, 그렇게 나를 통해 보여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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