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다시 보는] 부흥 part.3 본문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설교문답게, 앞선 2장에 이어 3장 또한 창 26:17-18에 대해 다룬다.
이번 단락에서는 이삭이 파려는 우물을 블레셋이 막았다는 점에 포커싱을 맞추고 있다.
블레셋이 우물을 막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앞선 단락과 연관시켜 생각해야 한다.
이삭이 우물을 팠다는 것은 삶의 가장 기본이되는 '물'을 우선적으로 찾기 위함이었고,
그러기위해 다른 것보다 이전에 아버지세대에서 팠던 우물을 다시 찾아 파려했다.
이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물의 공급책을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고,
오늘날로 말하면 세상의 다양한 방식으로 하려했던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검증되어지고 신앙의 선배들이 붙들었던 진리를 다시 붙들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삭은 우물을 다시 파려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미 전제되어 말하고 있듯이,
우물을 다시 판다는 것은 막혀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블레셋 때문이었다.
생수의 근원을 블레셋이 막은 것이다. 왜? 이유야 간단하지 않겠는가?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이런 블레셋의 행위가 결국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틀어막은 것이라 비유한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3가지이다.
: 하나님에 대한 기본지식, 성경의 권위, 죄에 빠진 인간
더불어 당시(저자가 설교했던 그 때) 만연했던 시대사조를 예로 풀어나간다.
물론 오늘날을 비교해볼 때,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여전히 동일한 것은 위의 3가지일 것이다(물론 그래서 이것만 기록했지만).
이러한 저자의 설교를 두고 볼 때, 오늘날은 어떠할까? 블레셋이 막는 진리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요소는 사실 위에서 말한 것과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시대에 접어들어 조금 더 컴팩트하게 정리를 한다면 개인주의가 아닐까 싶다.
개인주의, 이것을 어떻게 이 시대사조와 맞물려 선포할 것인가?
이것이 결국 오늘의 독서를 통해 내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더불어, 이어지는 저자의 설교를 통해 더 깊이 답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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