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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부흥 part.5

텔레울로스 2021. 7. 5. 14:49

기나긴(?!) 창세기 여정을 마무리하며, 이제부터 수 4:21-24의 말씀을 살피게 된다. 본문은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길갈의 돌을 기념하라고 하신 내용이다.

 

사실 본문은 일반적으로 내용이 정해져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묵상의 풍성함이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본문 안에서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며 앞으로 시작될 대서사시(?!)의 서론을 연다. 앞선 창세기 말씀을 통해 '부흥'이라는 주제의 방해물에 대해 살피고, 본문을 통해 '부흥'의 조건과 규칙을 살핀다. 특별히 저자는 이 사건을 하나의 예로 시작해, 역사가운데 드러난 부흥의 모습을 전반적으로 돌아본다. 

 

하나님께서는 왜 길갈의 돌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는가? 이 부분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계속해서 잊어버리는 인간의 한계를 살핀다. 왜, 어떻게해서 인간은 이런 분명한 사건마저 잊어버리는 걸까? 결국 인간 중심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날을 돌아볼 때, 자신의 삶으로 인해 다른 것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는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인간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주관적이 아닌, 객관적인 지표를 남겨두시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결국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었다.

 

오늘날 길갈의 돌과 같은 것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바로 '성찬식'이다. 주님께서 성찬식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객관적인 표식 아니겠는가? 그러나 성찬식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얼마나 기대하며 기억하며 주님께 감사하곤 하는가? 나 또한 나름(?!)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애쓰지만 실제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감동은 너무나도 미비하다. 이 안타까움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그만큼 영적으로 민감치 못하고, 그만큼 성찬식을 준비하지 못한 내 개인의 책임 아니겠는가? 

 

위에서 언급했듯, 저자는 자기 중심성을 꺼내며 오늘날 성경마저 자기 주관으로 바라보려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사실 이 부분.. 참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다. 결국 이 세대가 가지고 있는 묵상의 모습에 대해 비판을 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본문의 핵심'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주관에 따라 마음 가운데 찾아오는 감동으로 본문을 바라보는 이 태도. 이 태도를,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 나의 선배 또한 이 부분에 대해 자신의 서적에서 진솔하게 말해주었다. 결론은 마냥 잘못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후 직접 만남으로 한 번 여쭤봐야겠다). 그러면서 저자는 성경을 마주하는 자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말한다. 그 2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죄에 대한 비참함과 더불어 주님의 은혜이다. 당연한 2가지이지만, 이 세대에 보이지 않고 필요한 2가지. 

 

 

이렇듯, 오늘도 한 챕터에서 중요한 원리를 보게 된다. 

1) 계속해서 잊어버리는 인간의 한계

2) 그럼에도 인간을 위해 객관적인 지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

저자는 길갈의 돌을 통해 이 2가지를 끌어내고, 여기에서 결국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한 2가지로 안내한다.

1) 인간의 죄성

2) 구원자 예수

 

* 나의 영적스승인 마틴 로이드존스의 서적을 통해 먼저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동시에 설교를 또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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