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모든 순간이 너였다. 본문
제목만 두고 볼 때, 마치 연애소설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 '너'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역시 목회자는 성도를 만나야 한다.만났을 때, 듣게 되고 깨닫게 되고 얻게 된다.
'구역예배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집사님의 답변, 그 결론은 이렇다.
'다들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해요'
정말 감탄사가 나오는 바람직한 성도의 고백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집사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목사님 구역예배 한 번 오세요. 알려주세요.'
아마 이 대목을 보고도 감탄하지 않을 사역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집사님은 현재 함께 사역하고 있는 자리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참 좋다고 마음을 나눠주셨다.
만남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집사님의 표현을 되짚을 때 딱 떠오르는 생각.
'그렇다면, 모든 자리에서 그냥 말씀을 전하면 되는거 아닌가?'
'늘 마주하는 자리, 내가 서 있는 자리,
그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 그것을 선포하자!'
말씀 선포라 한다면, 문자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성도에게 선포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왜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물론 말씀을 선포하기 위한 설교준비가 그냥 되어지는 건 아니다.
그만큼 묵상해야 하고, 그만큼 연구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을 써야 하고 그만큼 집중해야만 한다.
목회자들의 암묵적 룰이 있다면,
설교 1분당 1시간 준비다.
그런 점에서 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목회자에게 당연한 것처럼 들리면서도 이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게 맞네?
뭐 더 고민할 게 있겠는가? 시작하자.
바로 내일부터 모든 자리에서 나눌 수 있을만큼의 묵상을,
그만큼 아버지의 뜻을 알기 위한 발버둥을.
주 안에서 애쓸 때,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다.
골 1:28-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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