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사도행전 15장 1-5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5장 1-5절

텔레울로스 2018. 4. 4. 20:37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자신을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로 돌아온 바나바와 바울은 그곳의 성도들과 자신의 간증을 나누며 귀한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유다(예루살렘으로 보인다)에서 온 무리들이 교회를 방문해 성도들을 가르쳤다. ? 그런데 그 가르침이 지금까지 바울과 바나바가 선포한 것과 다른 것이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는 무엇이 더 성경적인 것인지 그들과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논쟁이 끝나지 않자, 바울과 바나바는 당시 교회의 시점이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로 가 많은 사도들과 장로들 앞에서 진리의 여부를 가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가 되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교인들과 사도들, 장로들은 바울과 바나바 일행을 기쁨으로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전도여행가운데 경험한 하나님과 이방인들을 향한 뜻하심을 나누며 구원의 근거를 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파에 속한 일부는 이방인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와 더불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오늘의 본문 속에는 바울과 바나바의 논쟁이 언급된다. 이 논쟁이 벌어진 것을 무엇 때문이었는가? 바로 구원에 대한 근거였다.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바울에게 있어 구원의 근거는 오직 믿음이었다. 이것은 바나바 또한 동일했을 것이다. 바울이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보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하며, 동시에 자신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대에서 찾아온 무리들이 말하는 바, 구원의 근거를 두고 할례라고 하니 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하지만 무리들 또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끝까지 주장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바울과 바나바는 당시 가장 영향력이 있던 예루살렘 교회로 떠나 진리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비록 후반부를 보면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이어 베드로와 더불어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권위 있는 주장으로 비성경적인 무리들의 주장이 한풀 꺾이고 상황은 정리된다.

우리는 본문의 내용 속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에 주목하려 한다. 그 모습은 바로 진리를 끝까지 수호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참된 이치를 뜻한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의 가르침을 뜻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에서 온 자들의 잘못된 논리에 맞서 끝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오직 믿음이라는 구원의 근거를 지키려 했다. 논쟁이 종결되지 않음에 예루살렘 교회에 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본문에서 드러나는 바울과 바나바의 수고는 이전에 겪었던,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많은 상황과 비교하자면 큰 임팩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진리를 끝까지 수호해내려 했다는 사실이다.

 

이 세대가 어떤 세대인가? 세상의 법이 진리를 누르는 세대이다. 일례로 동성애를 들 수 있겠다. 이미 유럽과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동성애가 합법화가 되었다. 성경에서 동성애는 엄연하게 로 규정되어 있다. 이 말인 즉, 성경에서 금하는 것이 더 이상 죄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명분으로 진리를 외치다가 법을 어겼다는 명분으로 벌금을 내거나 형을 살게 될 수도 있는 것이 당장 우리 앞에 놓여 진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답은 정해져 있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아니 부인하고 싶겠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대한민국 사람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이다. 세상의 사람들과 동일한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과는 구별된 하늘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오늘의 바울과 같이 진리를 수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삶을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어떻게 진리를 세워나갈 수 있는 것인가? 우선적으로 진리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성경을 알고, 말씀을 들음으로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곧 진리이며, 말씀을 깨닫게 되는 그 자체가 진리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삶은 하루 살아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매일매일, 아니 순간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앎이나 순종, 실천이 아니라 매 순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모습이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한 모습인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그러한 고뇌가 곧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며, 온전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 28장 40-43절  (0) 2018.04.09
사도행전 15장 6-21절  (0) 2018.04.05
사도행전 14장 19-28절  (0) 2018.04.03
사도행전 14장 8-18절  (0) 2018.03.29
창세기 45장 3-8절  (0) 2018.03.2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