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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장 6-21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5장 6-21절

텔레울로스 2018. 4. 5. 17:19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앞서 안디옥 교회에 들어온 무리로 인해 진리에 관한 이견이 생기자,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과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자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로 가 사도들과 장로들과의 논의를 통해 진리를 굳건히 세우고자 했다.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에 도착해 의논이 벌어지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변론 중 베드로가 일어나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환상을 통해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직접 확인했기에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사도이면서 동시에 초대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베드로이기에 그곳에 있던 무리는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바나바와 바울이 일어나 자신들이 선교여행에서 겪었던 많은 이방인들의 회심사건을 나누었다. 누구보다 박학다식하며 변론가였던 바울에게 이전 베드로의 이야기는 아마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자, 당시 예루살렘의 수장이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일어나 상황을 정리한다. 야고보 또한 이야기를 시작함에 앞서 베드로도 바울과 바나바가 주장했던 것에 동의했다는 점을 근거로 말씀을 인용하며 결론을 맺는다(19-21).

앞서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로 이끄시며 진리를 수호하려 하셨다면, 본문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임을 확정하는지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방인들은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있다는 것과, 구원의 근거가 믿음이라는 것을 확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순서상 2가지였다. 말씀의 체험, 말씀의 확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베드로, 바울과 바나바는 모두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그리고 그 근거는 오직 믿음뿐임을 설명했다. 사실 이들은 누구보다 구약의 율법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지식적으로, 문자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삶으로 직접 경험한 앎이었다.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교회 내에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한 번 읽는다고 하나님의 뜻을 다 알아 곧이곧대로 세상을 이기는 슈퍼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인가? 한 번 읽는다고 세상을 이긴다면 이 세상 그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보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오류 속에서 살아간다. 매일 적당한 정도의 성경을 읽으면 신앙생활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읽으면 그 말씀이 내 것이 된 것인 양 착각한다. 물론 성경을 읽는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귀한 행위인가. 그러나 성경은 문자적으로 읽기만 하는 것을 넘어 직접 삶에서 그 말씀이 나의 것임을 경험해야 한다. 말씀을 삶에서 직접 경험하게 될 때, 비로소 이 말씀을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오늘 힘차게 발언했던 베드로와 바울처럼 말이다.

다음으로 야고보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살펴보자. 그는 경험에 근거했다던 사도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확증했다. 요즘 세상을 보면 각종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너도나도 진리,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쳐댄다.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도 조차 쉽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물론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면 그 하나만으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은 무슨 근거로 자신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그러한 말들을 성경에 비춰보며 확인해봐야 한다. 물론 기도나 성령의 충만할 때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성령의 감동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감동이 주어질 때 무조건적으로 맞다는 확신보다, 성경 안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지 야고보처럼 검증하는 태도가 분명히 필요하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17:6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조차 인본주의에 물들어 자신이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세대 속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묻고 확인하는 절차는 더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오늘 이 묵상의 제목을 논증의 끝이라고 정했다. 논증이란 무엇인가? 옳고 그름을 이유를 들어 밝히는 것을 뜻한다. 본문이 그렇다. 베드로의 논증, 바울과 바나바의 논증, 야고보의 논증. 등장하는 인물마다 자신의 논증을 제시하였다. 이들이 주장했던 논증은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사상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 율법의 틀 안에서 시작되어 경험하고 확증했다.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분명히 필요하다. 비록 그 누군가는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세대가 그만큼 악해졌기에 오직 말씀만이라는 명제를 더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사탄이 더 치밀하게, 우리들을 가만두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순서를 정리해보려 한다. ‘오직 말씀이라는 것은 단순한 지적인 앎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말씀을 직접 경험하고 말씀으로 확증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모습으로 혼탁한 이 세대 속에서 참된 진리만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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