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누가복음 5장 36-39절 본문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예수님시대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당시 세리라는 직업은 동족에게 걷은 세금을 로마에 바치는 역할로 매국노 같아 보였다. 그 중 레위라는 세리를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레위는 자기 집에 큰 잔치를 벌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대했다. 이러한 모습에 바리새인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어떻게 매국노와 함께 먹고 마시냐고 물어보며 몰아붙인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침착하게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함께 답하신다.
본문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방법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목적은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되는 새 옷과 새 포도주는 복음을 뜻한다. 이 복음이란 어찌보면 바리새인들이 그동안 붙들고 온 유대주의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의 가치를 모르고 그들에게 줘봤자,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뜻이 36, 37절에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복음의 이신칭의를 알게 될 때 바리새인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공로라는 것들이 무의미해진다면 하나님을 아예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새 포도주는 어디에 넣어야 하는 것인가? 즉 복음은 누가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답이 바로 38절에 제시되어 있다. 그렇다. ‘새 부대’ 즉, 새 마음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마음은 죄에 의해 오염되었다. 그로 인해 모든 인간의 마음은 죄의 지배하에 놓여 선이란 결코 추구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선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감을 뜻한다.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결코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존재가 바로 본문에서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은커녕 눈앞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를 어떻게든 문제 삼고자 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희들은 결코 이 복음을 받을 수 없다. 이 복음은 새 마음을 품은 자만이 받을 수 있다.” 그렇다. 복음은 새로운 마음을 품는 자들만이 받을 수 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옛 전통에 얽매여, 자신들이 그동안 해오면 삶의 방식이 좋다고 그것만을 쫓아 살아가는 자들은 결코 이 복음을 받을 수 없다. 복음이란 그만큼 삶의 전인격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복음을 받았는데 삶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장담하건데 그 사람이 받은 것은 복음이 아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셨는데 어떻게 삶이 변하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사람은 감정의 변화가 일어날 때 그 변화를 얼굴이나 행동에서 표현하게 된다. 하물며 아예 새로운 마음을 받았는데 삶의 행동양식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을 누가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 마음을 품기 원하는 자들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새 마음을 가진 자라고 말해야 한다. 이 마음은 누가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이 또한 인간의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그 마음을 주실 수 있다(겔 36:26). 옛 생활을 청산하기를 바라는 마음, 새 마음을 소망하는 마음, 그리고 새 마음을 받기까지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❶내가 받은 복음은 진짜인가? 복음을 받은 자는 결코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 비록 복음을 깨닫기 전과 180도 다른 삶을 살 수는 없더라도, 이전과는 분명 다른 마음가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예전 죄의 영향력에 살았던 것들을 회개하며 앞으로의 삶 가운데 어떻게 해서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❷자신의 모습이 아직 예전의 삶의 방식과 별다를 바 없이 동일하다면 새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전통에 매여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비방하고 죽으려 들고 싶지 않습니다. 새 마음을 주셔서 새 사람으로, 앞으로 그리스도 예수만을 위해 살게 해 주시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시 33: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하루하루 새 마음을 품은 자로써, 진짜 복음을 받은 자로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아멘.
'묵상 > 42. 누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20장 41-44절 (0) | 2021.03.24 |
---|---|
누가복음 22장 28-34절 (0) | 2021.03.19 |
누가복음 19장 1-10절 (0) | 2021.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