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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사역자의 고민

텔레울로스 2018. 4. 17. 08:36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

주말이 흘러 룸메와 함께 저녁 외식을 하게 되었다.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며 지난 주에 있었던 삶을 나누었다. 나보다도 더 다이나믹했던 룸메의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며 웃기도, 공감하기도, 슬프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속에서 내게 던져졌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사역자가 교회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

 

이 질문은 한 때 내가 계속해서 붙들고 지냈던 고민이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사역자는 지난 날, 오직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헌신하겠다고 결단한 자들을 말한다. 나 또한 동일하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부르셨기에 그만큼 사역자로써의 행복 또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하는 질문과는 다른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연 사역자가 교회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혹자는 말할 것이다. 매일의 삶 가운데 주님과의 교제가 아닌가, 혹은 말씀을 전할 때 가장 행복한 거 아닌가, 또는 영혼들이 변화할 때 가장 행복한 것 아니겠느냐. 뭐 이러한 말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저 질문은 그만큼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큰 기대감을 전제한 것이 아니겠는가? 굳이 비교를 하자면 사역자들에게 교회는 직장이지만 그 직장이 단순히 세상의 직장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그것도 사역자가 행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 슬프다는 표현 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사역자는 어디에서 행복을 얻으라는 말인가? 교회에서 행복을 기대하면 안되는 것인가? 교회란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공동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 참된 평안을 얻는 곳 아닌가? 그렇다면 사역자들은 그 교회에서 동일하게 행복을 구하면 안되는 것인가? 너무 큰 욕심인가? 계속해서 꼬리에 꼬를 문 이 질문들은 나와 룸메의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전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 참된 교회를 어떻게 세워나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답을 완전히 찾은 것은 아닐지라도 대략적으로 정립된 바가 있다. 그리고 맨 처음 나눈 것과 같이 '사역가 교회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라는 질문도 동일하다. 내가 지금까지 찾은, 정립한 답은 이렇다. "사역자가 교회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교회를 찾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적인 교회를 찾아 떠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대에서 완벽한 교회는 없고, 그렇기에 교회에 문제점은 존재한다. 그 문제로 인해 행복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다만 사역자가 계속해서 완벽한 교회를 추구하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과 같이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역자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불완전한 이 지상의 교회에서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세대는 '어쩔 수 없는 세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대의 악함이 이정도이기에 사역자가 원하는, 소망하는 바를 경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내용과 생각을 정리해볼 때, 사역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결론은 맨 위에서 나눈 말씀과 동일하다. "인내해야 한다."

 
아침부터 말씀을 마가복음 말씀을 읽어 나가는데 딱 눈에 띠었던 말씀. 눅 21:19. 이 한 줄이 어제 룸메와 나눴던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이 된다. 더러운 세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는 오직 한 가지 뿐이라고 생각된다. "인내하는 것" 물론 예수님 세대 또한 동일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이러한 현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 또한 인내하셨기 때문에. 나보다, 우리보다 더 억울하셨을 것이며 더 타당하게 여겼을 많은 것들에 대해 더 어려웠던 예수님, 그는 신이었지만 신으로써의 대접을 받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의해 살해를 당하셨다. 교회라고 자처하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교회를 세우신 것이었다. 하... 이것이 바로 사역자들의 운명인 것인가? 우리가 죽음으로 더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 이 순간 괜한 소름이 몸에서 끼쳐온다. 내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더 성경적인 교회를 세운다... 주여... 삶의 여러 환경을 떠나 요즘들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내 자신이 죽어야한다는 깨달음들이 몰아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깨달음을 주시는 것 자체는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그만큼 나의 연약함만이 드러나기에 도무지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이렇듯, 답없는 내게 이 간구로 모든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을 고백합니다. 이 더러운 종에게 주의 한없는 은혜와 긍휼을 덧입혀주셔서 오늘도 인내함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온전한 노예가 되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처음 사역자가 될 때 제가 주셨던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만 드러내는 인생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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