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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로이드존스 (MARTYN LLOYD-JONES)

텔레울로스 2018. 4. 19. 10:17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사람마다 각자의 멘토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인생의 멘토 세 분이 계신다. 첫째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강여사님 둘째로 내가 신학의 길을 가는데 있어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신 조 선교사님, 마지막 세번째는 신학의 멘토 바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시다.


처음 로이드존스 목사님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명확히 기억을 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1년간 선교지에 있으며 접했던 책을 통해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신학을 하기로 결단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단지 영의 양식을 위해 기독서적을 접하고 있었지만, 점차 이 분께 빠지게 된 것 같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을 더 깊이 알게 된 것은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 그분의 책을 독식하면서부터였다. 후에 분명히 소개할테지만,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교리 강좌 시리즈를 접하면서 그분의 매력에, 신학적 깊이와 영혼들을 향한 이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 이후 이 분이 쓴 책들은 가리지 않고 뭐든 집어삼키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가운데 어느 일정 시기, 책을 검색하다가 우연찮게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책의 소제에 써있는 대로, 20세기 최고의 설교자라 불리는 나의 멘토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전기이다. 언젠간 한 번 멘토의 전기를 읽어보면 어떨까 싶었던 찰나에, 타 출판사의 3권짜리 시리즈와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한권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

 

책의 저자 이안 머레이는 누구보다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제자이자 동역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살아 생전 함께 했던 그의 멘토 로이드존스 목사님과의 실제 이야기들과 그의 가족들, 그 외 지인들을 통해 받은 여러 자료들을 취합해 이 전기를 작성했다고 기록한다.

 

그는 누구인가? 어렸을 때부터 학업에 있어 탁월한 면을 보여 23살에 내과, 외과학사 학위를 받았을 뿐 아니라, 25살에 당시 왕립 주치의였던 호더 경의 수석 어시스턴트가 된 미래가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그러나 그는 점진적인 회심의 과정을 겪어감에 따라 깊은 고민과 하나님과의 교제 끝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28살에 설교자로서의 소명에 응답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끌어냈고, 이 일을 할 사람으로 나를 구별하셨다."

본래 사역자이기전부터 복음전함에 있어 탁월했던 그는 1년 후에 베단 필립스와 결혼해 어린 나이에 담임목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사역자로서 그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 설교자로서의 사명이 가장 중요했으나 도서관에서 접한 개혁주의 신학과 교리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어 훗날 도서관 사업을 지원할 뿐 아니라 도서 출판에 뛰어들어 새로운 사역을 연다.

40살의 나이에 웨스트민스터 채플 사역에 합류한 그는 5년 뒤, 45살의 나이로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단독 목회를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그 사이 대학 교수의 자리에 초빙을 받았으나 노회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이 후 바이블 칼리지의 학장 자리에도 초빙되었으나 스스로 사양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 다른 사역의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에게 허락하신 목회사역에 집중을 했다. 그리고 47살에 그가 전부터 바랬던 도서관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5년 후에는 제임스 패커와 더불어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청교도 컨퍼런스를 시작하여 자신이 큰 영향을 받은 개혁주의 신학을 본격적으로 전하기 시작한다. 7년 후에는 개혁주의 신학을 널리 나누기 위해 출판사를 설립해 책들을 보급하는 사역을 시작한다. 훗날 그는 로마서 강해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설교사역에 종지부를 찍는데, 비록 설교자의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음에도 이후 남은여생을 집필사역에 집중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집필했던 책들이 바로 이 시대 우리들이 접하는 저서들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자유주의자들과 선한, 격렬한 투쟁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복음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로이드존스는 기독교 신앙을 보는 폭넓은견해보다는 엄밀한입장을 항상 역설했기 때문에 반대파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전기를 보면 그는 IVF의 총재로 IVF가 성경무오성을 믿지 않는 이들과 협력하기를 거부했을 때 이와 관련해 가장 큰 비방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 머레이는 로이드존스가 적대를 당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이러한 복음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사상적 대립은 갈수록 심해졌다. 1960년에 그는 영국의 영적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음을 봤다. 연합을 근본적 원칙으로 제시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거세지고 있음을 보며 훗날 발생한 문제점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에큐메니컬 운동의 원칙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연합운동이 성장하게 된 토양에는 자유주의적 성경관이 만연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 진리를 믿어야 한다는 개념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합의 목적을 위해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내어준 것과 같은 어리석은 실수는 범한 것이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 의하면 수세기동안 목숨을 걸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했던 자들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는 꼴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영적 상태가 더 나빠져 갔다. 이 운동에 의해 복음주의 진영에까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균열은 1966년 전국 복음주의자 총회 개회 연설에서 로이드존스 목사의 연설을 존 스토트가 반박함으로써 가시화되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충격은 제임스 패커와 결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로이드존스는 이 사건을 그의 생애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경험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패커의 모습에 머레이는 이렇게 기록한다.

패커 박사가 왜 성경무오와 관련된 자유주의자들의 불신앙과 오직 성경교리에 대한 카톨릭과 고교회파의 오류에 정면으로 대응하려 하지 않았는지 필자는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초자연적인 일에 대한 공통의 믿음을 지나치게 필수적으로 요구하면 동맹이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전통을 성경과 나란히 세우고 하나님의 계시의 일부로 여기는 것은 결코 작은 오류를 관용하는 게 아니다. 바로 이런 가르침이 부패를 낳았고 이 부패 때문에 필연적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덧붙여 브레이는 이렇게 말한다.

로이드 존스가 명확하게, 우리가 느끼기에 패커 박사나 존 스토트보다 더 명확하게 본 것은, 성공회 복음주의자들이 잉글랜드 국교회 체제에 지나치게 관여할 경우 날카로움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브레이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이안 머레이의 말에 훗날 패커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한다. 이를 듣게 된 마틴 로이드존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가장 귀한 동역자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닫게 된 것에 감사하면서도, 이미 자유주의가 팽배해진 이 상황에서의 깨달음은 너무나도 늦었다는 아쉬움이 크게 들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남는 감동은 크게 3가지였다. 치열함, 고독함, 열정.

로이드존스는 그의 가장 귀한 동역자 조차 놓쳐버린 기독교 진리를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복음주의 내에서 투쟁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 가운데 느껴지는 고독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고독함이란 진리를 위한 투쟁 그 자체였을 것이다. 물론 그 고독함 가운데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은혜와 깊은 깨달음이 존재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고독함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계속적으로 그의 진리를 수호하는 사자로 쓰시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을 테니까

앞서 말했듯이 설교자로써의 사역을 마감한 그에게 삶의 노년기는 제2의 사역시작이었다. 출판사역을 통해 죽기까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던 로이드존스. 그를 멘토로 생각하는 나이기에 누가 보면 너무 그를 칭송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되레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전혀 악감정 없이 물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로이드존스와 같은 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감히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지만, 어찌되었든 그리스도의 온전한 노예가 되기를 소망하는 나에게 이 책은 다시금 좁은 길을 담대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드는 동기를 부여해줬다. 이것이 사역자의 길인 것인가? 과연 나는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인가? 나에게 이 치열함이 있는 것인가? 이 고독함을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는가?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는 열정이, 오직 그리스도예수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나에게는 과연 있는 것인가?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자니 당장이라도 사역자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기에, 답은 천천히 찾게 해주실 주님을 의지하기로 결론을 내리려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맞는 질문은 무엇이며, 내가 답을 달 수 있는 적절한 질문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에 나는 로이드존스가 바이블 칼리지에서 언급했던 한 문장을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는 많은 신학생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큰 문제는 신학적 설교의 부재이다.” 이 문제는 그의 사후 4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도 동일하다고 사료된다. 이에 나는 사역자로써 가장 기본이자 우선시되어야 하는 설교가 온전히 선포될 수 있도록,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설교자로써 준비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거룩하신 주님, 이 더러운 죄인, 그리스도 예수의 온전한 노예 되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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