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사도행전 17장 1-9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7장 1-9절

텔레울로스 2018. 5. 4. 21:33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매를 맞고 옥에 갇혔던 바울과 그의 일행들은 자신의 정체를 밝힘으로 상황이 역전되어 되레 부탁을 받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이 세상이 진정 그리스도인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본문은 빌립보를 떠나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도착한다. 바울은 평소 하던 데로 회당으로가 3주 동안 성경을 강론했다. 그 내용인즉 그리스도가 죽었다 부활했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라는, 유대인들이 죽인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복음을 들은 경건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쫓기 시작했다. 이에 유대인들은 복음을 쫓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에 시기하여 불량배들을 데리고 야손의 집을 침입한다. 불량배들을 통해 야손과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바울일행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량배들은 야손의 집에서 바울과 실라를 보지 못하자, 야손과 그의 형제들을 데리고 시장에게로 끌고 간다. 그리고 이들이 가이사가 아닌 예수라는 사람을 왕으로 섬긴다고, 반란의 죄로 고발했다. 이러한 죄목에 놀라지 않을 관료가 누가 있겠는가? 이에 시장과 그곳에 있던 무리들은 소동하였으나 보석금을 받고 그들을 풀어주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얻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지불하며,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전심을 지불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삶을 지불한다. 사람마다 각양각색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야손 또한 그러했다. 사실 1-4절까지는 바울이 행한 일에 대해 언급되지만, 5-9절까지 본문의 절반에서 야손이라는 사람이 언급된다. 그렇다면 야손은 누구인가? 성경에서 이 사람에 대해 단 두 곳에 언급되는데, 첫 번째는 오늘의 본문이며 두 번째는 롬 16:21이다. 그나마 로마서에조차 문안을 했다는 것 이외 다른 정보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과 바울일행을 섬겼다는 정보일 뿐이다. , 그는 지금 바울과 실라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반역자로써의 고소를 당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다행인 것은 그들은 앞서 겪은 바울과 실라처럼 옥에 갇히거나 매를 맞지는 않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하지만 어디 그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반역자로써 고소당한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초리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야손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돈과 사람들의 시선 말이다. 이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한 번 던져보자. 과연 우리는 현재 그리스도인으로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혹자는 이렇게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을 믿으면 믿는 거지 대가가 어디에 있나요? 예수님 믿으면 복 받는 것 아닌가요? 저는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교회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혹여 지금 이 질문을 마음속에 떠올렸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구원을 결코 값싸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냥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대답 앞에 또 이렇게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에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대가를 치르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에 필자 또한 다시 한 번 이렇게 답하겠다. 구원을 믿으면 거져 받는 것이지만, 구원받은 자가 저 천국에 이르기까지 치러야 할 대가는 야손보다 더합니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자의 삶 앞에는 많은 대가가 요구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써 유대인들의 배척을 받고 음모에 죽임을 당했듯이,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은 받은 자의 삶 또한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한다. 과연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무슨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인가?”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찌 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단의 아무런 방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 그들은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탄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멀리 떨어뜨리게 하기 위해 갖은 음모들을 꾸미고 우리들을 유혹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알아서 예수님과 멀어져가고 있다면 왜 굳이 그 사람을 부추기겠는가?

혹여 자신이 현재 이 땅에서 너무 과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면 걱정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치른 모든 대가들을 기억하시고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하사해 주실 것이다. 마치 승전보를 들고 돌아오는 장수에게 갖은 보물들을 하사하는 왕처럼 말이다. 영원한 삶 앞에서 잠시잠깐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물질과 축복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살아가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축복을 누릴 것인가?

 

마지막으로 분명히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구원은 거저 받는다고 했지만, 이 사실 앞에 엄청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감에 겪는 고통과 치러야 하는 수많은 대가들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가와는 결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셨다. 이 죽음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 가운데 있을 심판에서의 영원한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얻기 위해 아들 예수를 불구덩이에 넣는 고통을 대가로 치른 것이다. 이 사랑 앞에 과연 그 누가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이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말고 똑바로 살아가라는 일침을 놓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수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런 우리의 삶 뒤에 엄청난 은혜들이 기다린다는 것을 말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 은혜들은 정말 어마어마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다는 것. 그 하나보다 귀한 은혜가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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