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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eoulos

사도행전 17장 10-15절 본문

묵상/44. 사도행전

사도행전 17장 10-15절

텔레울로스 2018. 5. 9. 17:14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바울과 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위기를 맞지만, 야손과 형제들에 의해 위협을 넘기고 도움을 받아 베뢰아로 넘어가게 된다. 그곳에 도착해서도 바울과 그 일행은 역시나 회당으로가 복음을 전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사람들보다 복음 받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복음에 대해 호의를 가질 뿐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말씀을 날마다 자세히 살펴보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에 누가는 그곳에 있던 많은 귀부인들과 남자들 또한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에 못지않았다고 기술한다. 이렇듯 복음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을 때, 데살로니가에 있던 유대인들이 그 소식을 듣고 베뢰아까지 쫓아와 바울의 복음 사역에 훼방을 놓기 시작한다. 이에 바울은 형제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아덴으로 피신하게 된다.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복음을 들고 살아가는 자에게 필요한 삶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2차 전도여행을 떠난 바울 일행의 일정을 보면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베뢰아까지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서 복음을 받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개인에서 집안, 한 지역의 회당에 이르기까지 점차 넓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더 나아가 본문 같은 경우, 주 무대인 베뢰아에서는 데살로니가에서의 사람들보다 더 호의적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아름다운 열매의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복음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 바울 일행이나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충분히 앞으로 벌어진 모든 선교에 대해 더 큰 희망과 열매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꿈이 뭉게뭉게 퍼져나갈 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찬물이 끼얹혀졌다. 그것이 바로 13절이다. 이러한 찬물의 발생지는 다름 아닌 이전 선교지에서 방해했던 무리들이었다. 바울과 그 일행의 입장에서 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물론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과 더불어 형제들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그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그 상황을 벗어난 것에 안도감을 갖고 그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했듯이 바울과 같이 복음을 들고 살아가는 자에게 중요한 삶의 원리를 발견해야 한다. 그것은 충만할 때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세기 2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탄은 참으로 간사하다. 에덴동산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평화로이 지내던 하와에게 다가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교란시켜 혼미하여하게 결국 불순종하게 만든다. 물론 이 가운데 인간의 책임도 분명히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악의 모습으로 다가간 뱀의 간교한 유혹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의 모습은 다름 아닌 오늘 본문에서도 등장한다. 바울과 일행들의 복음전파로 더 많은 영혼들이 그들에게 찾아와 변화되는 그 순간, 사탄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악의 세력들, 즉 바울일행을 괴롭히려 들었던 무리들이 베뢰아까지 찾아와 그들을 방해했다. 한창 뜨거워질 무렵, 한창 복음이 더 확장될 무렵, 어떻게 보면 복음전도자들이 잠시 쉼을 갖거나 열매의 놀라움에 잠시 한숨을 돌릴 무렵 찾아와 훼방을 놓는 것이다. 병사가 대승을 거두고 잠시 성벽에 기대어 간식을 먹고 있을 무렵, 갑자기 적들이 기습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간교하면서도 사악한 전략이다. 사탄은 한시라도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 달려들고 놓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운데 조금의 틈이라도 벌어진 것을 본다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파고들려 한다. 그들은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는 우리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고 있는 우리들을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에(1:12)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공략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방심했을 때 사탄에게 받는 공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공격을 받아 넘어진 우리들 마음 가운데 사탄이 자책과 죄의 부담감을 아주 깊게 심어놓는다는 것이다. 한 번 무너진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생긴 자책과 죄의 부담감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정체성까지 뒤흔들기 때문에 사탄의 연이은 공격들은 아주 막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안타깝지만 사실 모든 인간은 죄의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받을 수밖에 없는 그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성령의 충만함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하면 죄의 요소들, 사탄이 유혹하려고 하는 흐름들을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고, 그렇게 다가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말씀을 붙잡고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충만할 때, 그러니까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간 것처럼 생각할 그때! 더 조심해야 한다. 사탄은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은 두면 알아서 죄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다가 지옥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기억하자. 어느새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할 때, 말 그대로 충만하다고 여겨질 때 더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탄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간 자들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잠시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았을 때 그 틈을 이용해 덮친다. 마치 예수님을 바라보며 바다 위를 걷던 베드로가 잠시 파도를 봄으로써 바다 아래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14:28-30). 선줄로 생각했을 때 조심하자(고전 10:12).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고 쉽게 넘어지고 교만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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