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사도행전 19장 11-20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9장 11-20절

텔레울로스 2018. 7. 4. 16:18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1. 관찰: 본문 요약

성령의 임재로 제자들을 세우고, 말씀을 통해 에베소 사람들을 깨우는 바울은 계속해서 능력을 드러낸다. 본문 11절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능력임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가 얼마나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는지 그의 소지품을 통해서까지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마술을 하던 유대인들이 바울의 능력 행함을 신기하게 여겨 그의 사역을 면밀히 관찰한 뒤,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자신 또한 귀신들을 내쫓아보려고 시험을 감행했다. 이러한 어리석은 행동은 유대인들 뿐 아니라, 제사장의 아들들까지 이어졌다.

그들이 확신도 없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남용하자, 귀신들린 자에게 붙어 있던 악귀가 오히려 무시해버리고 그곳을 떠나간다. 이 사건을 듣게 된 많은 에베소 사람들은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그분의 이름을 높이기까지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또한 복음을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지난날의 삶을 회개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말씀에 힘이 있어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는 성장하며 부흥해나갔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살펴보고, 오늘 날 우리에게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해석: 본문 연구
오늘의 말씀 또한 바울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다양한 능력들을 볼 수 있다. 그 능력은 축사와 신유 뿐 아니라, 마귀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13-16절에 한 번 집중해보자. 계속해서 많은 이적과 기사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유대인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 아니라 의아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 난거지?” 그 중에서 마술을 했던 유대인들이 너무 의아한 나머지 시험 삼아 예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데 귀신들린 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들은 떠나가라!” 이런 일들이 아마 한 두 사람에 의해 시행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유대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제사장의 아들들까지 이 어리석은 일에 동참을 했으니 말이다. 사람 속에 있던 귀신들이 이들의 명령을 듣자 어떻게 반응했는가? 너희는 뭐냐?” 아마 조롱하며 비웃음과 함께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귀신들은 보란 듯이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린 유대인들을 짓밟고 그 자리를 떠나간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인가?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에베소의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이 사건을 듣게 된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분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다. 또한 돌아온 자들은 자신의 지난날의 어리석은 삶을 회개하며 삶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교회는 능력의 말씀으로 인해 더욱 성장하며 부흥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2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비록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그리스도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으나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행위를 통해서도 그를 다시 높이셨다는 것이다. 십계명 제 3계명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관에 의하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남용했던 자들은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했었다. 그런데 유대인이라는 자들이, 그것도 제사장의 아들들이라는 자들이 율법을 알면서도 그러한 일들을 벌인 것인가? 이는 그들이 율법을 몰랐다거나, 혹은 율법을 앎에도 그 율법을 무시했다는 것 이외에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비록 그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있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시지 않고, 그들을 통해 이 사건이 에베소에 널리 퍼지시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그들을 통해 이 사건이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그대로 입소문을 타 흘러들어갔다. 그렇게 에베소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 가운데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게 된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분이시다. ,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를 통해서든, 어떠한 방법으로도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과연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동안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인가? 고전 10:31의 말씀 그대로를 따르진 못하더라도 오늘의 말씀을 통해 스스로를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 결코 그분의 이름이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다루었듯이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본문은 아름답게 마무리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15절이다. 악귀는 말한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사람마다 뉘앙스를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시험했던 자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남용했던 자에게는 그 이름이 결코 능력으로 작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곧 힘이요, 능력임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앞서 살펴봤던 말씀에도 있지 않은가(2:38, 3:6, 16:18)? 우리가 매일 고백하는 찬양의 가사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이 곧 능력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드러나는 것처럼 능력의 그 이름이 능력으로 드러나지 못한 것은 바로 선포하는 자가 온전히 그 이름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 그 이름의 능력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부끄럽지만 요즘 동료들끼리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왜 우리는 능력이 없이 쉽게 넘어지는 것인가?” 듣기 싫겠지만, 당연하겠지만 교회사를 통해 살펴볼 때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 대한 원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4장을 보면 바다 위를 걷게 해달라는 베드로의 요청에 주님께서는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바람이 불자 주님을 향한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 바다에 빠지려는 베드로를 향해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으나(14:31)” 바로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는 않은가? 처음엔 한 발을 내딛는다. 바다 위를 걷는다. 그런데 다음 발을 디딜 때 주님을 보지 않기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바다 위를 건너 저쪽까지 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따른 능력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과 유대인들의 모습, 14장에 나타난 베드로의 모습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인정하기 싫지만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3. 적용 및 결단
기억하자.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능력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이루어지겠지만, 그 가운데 인간이 의지적으로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하루하루 말씀과 가까이 하는 것이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한다. 매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 위해서는 죄성이 꽉 잡고 있는 우리의 자아를 떨쳐내고 계속해서 말씀을 통한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말씀을 머금고 살자. 힘들어도, 피곤해도 말씀을 붙들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에게 희망이란 없다. 이러한 굳은 결단과 간구가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도와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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