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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장 1-9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24장 1-9절

텔레울로스 2018. 8. 20. 17:35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상반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1. 관찰: 본문 요약
헤롯 궁에 있은 지 5일 후,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 그리고 한 변호사가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총독에게로 찾아왔다. 아마 이들은 암살 작전이 실패하게 된 것을 알고 난 후, 분통해하며 또 다른 계획을 들고 왔을 것이다. 변호사인 더둘로는 총독 앞에서 예를 갖춘 후 유대법 안에서 하나하나 고발의 요건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그가 발한 죄목은 총 4가지였다. 전염병 같은 자, 흩어진 유대인을 반란케 하는 자, 이단의 우두머리,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 그리고 총독에게 직접 심문할 것을 요청한다. 그의 뒤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동조하고 있다.

#2. 해석: 본문 연구
오늘의 본문은 재판장에서 벌어지는 법정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바울의 죄목이다. 그들이 말한 4가지 죄목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유대법에는 어긋났을지도 모르지만, 로마법엔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 24:21-22을 보면 사실 결론은 정해져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로마시민권자이기에 로마법을 따라야하지 유대법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지금 헤롯 궁에 있는 이유는 로마시민권자인 그가 유대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 때문이었다(깊이 살펴보면 바울은 유대법도 굳이 어기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시대를 바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가운데에서도 바울이 겪는 동일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바울이 로마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하고 그들에 의해 정죄를 받는 그 당시 현실은, 마치 하늘에 시민권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현 시대의 문화를 따르지 않아 손가락질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에 답하듯이 고전 1:18은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이 복음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문화를 따르지 않고 복음을 따르는 우리를 비정상적인 부류의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죽을 필요가 없다. (오늘 본문과 같이)세상 사람들의 소송과 고발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세상의 문화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잘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혹여 마음 가운데 이러한 질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은 아무렴 상관없이 오롯이 말씀만 따라 살아가면 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말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바울처럼 하면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로마시민이기에)의 법을 지키는 테두리 선에서 진리를 붙들고 살아갔다. 물론 그 당시 법이 성경에서 얼마나 상충되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24:21-22를 참고할 때 그는 범법하지 않는 선에서 오롯이 말씀을 지키며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국가마저 하나님의 권속아래 있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공동체이기에 자신은 그 국가의 시민으로써 국가법에 종속되어 살아가야 할 의무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세금과 기타 의무를 다하고 양심을 위하여 그들의 합법적 명령에 순종하며 그들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은 백성의 의무이다.” 즉 먼저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만 하는 의무가 존재하는 동시에, 현재 이 땅을 살아가는 사명자로써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에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의무 또한 있는 것이다.


#3. 적용 및 결단
사실 우리는 문화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 분명하다. (문화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냐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문화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삶의 모습은 문화라는 틀 안에서의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문화를 떠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보다 우선적인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문화를 누리면서 말씀과 충돌되는 부분이 있다한들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즉 말씀에 대해 상당히 무뎌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바울의 모습과 완전히 배치된다.

그러니 명확하게 정립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문화는 누릴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감을 조금이라도 훼방한다면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문화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유하게 누릴 때 누린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그것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문화를 떠나 있는 자라고 손가락질하는가?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독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슬퍼하지 말자, 무력해지지 말자, 기죽지 말자. 문화를 누린다는 변명 가운데 말씀을 떠나 방탕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더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한 삶일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도 분명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18:9)” 이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후의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삶을 기대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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