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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장 10-23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24장 10-23절

텔레울로스 2018. 8. 28. 19:11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1. 관찰: 본문 요약
바울이 헤롯성에서 구금되어 있을 때,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변호사를 대동해 총독 벨릭스에게 찾아와 바울을 고발했다. 이에 본문은 바울이 재판정 앞에서 변론하는 부분을 그리고 있다. 바울의 변론은 3가지 패턴이 2번씩 반복된다. 지난 날 자신의 행위(11, 17-18), 자신이 고발당할 근거가 없음을 피력(12-13, 19-20), 복음전파(14-15, 21)이다. 바울은 지난 날 자신이 예루살렘에 오기 전과, 와서 무엇을 했었는지 있는 그대로 언급하며, 그러한 행위 가운데 결코 고발당할 근거가 없음을 당당하게 밝힌다. 그리고 이 상황을 기회로 삼아 자신이 전파했던 복음을 재판장 앞에서 있는 그대로 고백문의 형태로 전파한다.
우리는 구조를 통해 본문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문맥을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 집중할 것은 바울의 변명이 어떤 흐름 속에서 이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가만 보면 바울의 모든 변명(?!)들은 사실이 아닌 것에서 나온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고발자들의 거짓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바울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22절은 이를 증명하듯이 말한다. (아내 드루실라를 통해 들었던 것인지)벨릭스는 바울이 말하는 기독교에 대해 일정부분 잘 알고 있었기에 암묵적으로 그것을 인정하며 그 자리를 파했다. 즉 벨릭스가 판단할 때, 고발자들의 말과 바울의 고백이 상충되어 바울이 신성모독과 관련되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결코 밝힐 수 없던 것이었다.


#2. 해석: 본문 연구
앞선 고발자들의 모습과 오늘의 본문에서 드러난 바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세상 가운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할지 귀한 교훈을 발견 할 수 있다.
그렇다. 인간의 타락 이후로 세상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을 가만두지 않으려 해왔으며 지금의 현실도 동일하다. 이러한 현실은 앞으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 맞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살아남기 위해 거짓된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세상에 묻혀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티내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성경은 말한다. (5:14)과 소금(5:13)으로 살아가라고 말이다. 이것은 어둠 가운데 밝히 드러나는 빛처럼 막 튀는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요, 소금처럼 어떠한 음식의 맛을 탁 튀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요, 다만 복음을 가진 자로써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말이다. 합당하게 살아갈 때 그 모습 자체가 빛이자 소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요일 1:3에서 말한다. 바로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그러지 않았는가? 그의 말에는 어떤 거짓도 있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던 것은 자신이 만나서 보고 들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전하려는 삶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 앞에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자.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요한의 고백처럼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전하고 있는가? 바울처럼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 예수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그저 분위기와 문화에 맞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어떤 모습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란 말인가?

#3. 적용 및 결단
자신이 만난 예수만을 전하며 살아온 바울, 그는 재판장에서조차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고하거나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동안 자신이 해온 모습 그대로를 고백했다. 그리고 이후의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로마로 이송된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마지막 사역지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에서 우리는 요일 1:3처럼 살아가는 자를 지속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앞으로가 어디인지 감히 인간으로 예상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건 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어떤 자리냐가 아니라 어떤 분이 함께 하시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찾고 계신다. 보고 들은 바를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자를 말이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10:2) 더 안타까운 사실은 추수할 일꾼 또한 많아 보이는 이 세상이지만 정작 제때, 제대로 추수할 수 있는 일꾼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때, 제대로 추수할 수 있는 일꾼이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간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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