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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3장 17-30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23장 17-30절

텔레울로스 2018. 8. 10. 21:51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1. 관찰: 본문 요약
앞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바울을 가만두지 않고 모함과 폭행, 살해, 그리고 종교적 타락의 현실에 직면하게 만드는 사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조차 바울을 은혜가운데로 계속해서 인도하셨다. 오늘의 본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신을 향한 암살작전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게 된 바울은 곧장 백부장에게 청해 자신의 생질이 천부장을 만날 수 있도록 요청한다. 백부장은 바울의 청을 받아 그를 천부장에게로 이끈다. 천부장은 그를 통해 유대인들의 암살작전을 알게 되고, 이에 비밀작전으로 대응한다. 바울을 총독 벨릭스에게 이송하기 위해 로마군을 준비시킬 뿐 아니라, 재판에 대해서까지 상고한 것이다.

#2. 해석: 본문 연구
바울이 총독 벨릭스에게로 이송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2가지 영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조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일하고 계신다. 본문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자는 바울이었다. 하지만 그는 17, 18절에 잠깐 등장했을 뿐, 주인공인 것처럼 등장하는 사람은 천부장이었다. 18절은 천부장-백부장의 대화, 19-22절까지는 천부장-바울의 생질과의 대화, 23-24절까지는 천부장과 백부장들과의 대화, 25-30절까지는 천부장-총독 벨릭스와의 편지글이다. 17절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천부장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만을 볼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봐야 한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천부장을 통해 자신의 계획하심을 이루고 계시지만, 정작 그 계획의 주인공은 바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어딘가에서, 그 누군가를 통해 일하시고 계신다. 단지 우리의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혹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한 적은 없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가?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하신 그 말씀을 무시한 적은 없었는가? 분명하게 말하거니와, 어떤 상황과 이유를 막론하고 이러한 생각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4:14)”,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725)”,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7)”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를 위해 단번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그것으로 충분함에도 저 하늘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고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너무나도 연약한 우리들은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이 사랑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각, 그 이상을 넘어선다. 바울의 생질이 천부장에게 암살작전에 대해 고했을 때 천부장이 조취한 행위는 무엇이었나? 그에 대응하는 비밀작전을 펼쳤다. 몰래 군대를 준비시켰을 뿐 아니라, 바울을 위해 총독에게 편지까지 작성했다. 그의 편지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는가? 자신이 생각할 때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한 사유가 없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천부장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었을까? 물론 바울이 정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암살자들에 의해 죽게 된다면, 엄격하기로 소문난 로마법에 의해 천부장 또한 분명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유대인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독기를 품고 혈전을 감수하면서까지 바울을 죽이려 들어도, 전투력에 있어서만큼은 로마 군인들에게는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천부장은 이렇듯 그를 비밀리에 이송시키는 강수를 두었다(혹시, 천부장이 겁이 많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던 자였다고 가정해본다면, 이렇게 조취를 취하는 그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정황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천부장의 조취는 조금 과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단순히 한 인간의 판단이라기보다는 그 위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바울은 암살자의 계략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천부장을 통해 무죄임을 인정받고 총독 벨릭스에게 넘겨졌다. 더 나아가 그는 최종 사역지인 로마를 향해 한발 더 내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기가운데 탈출시키려는 목적만 있던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특별한 은혜를 더 부어주시려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가? 진정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경은 이번에도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11)” 이 말씀은 단순히 말씀으로만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들에게 나타났다. 그 증거가 바로 십자가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지옥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이것만해도 우리에게는 충분히 과분한 축복인데, 하나님의 은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 생명이 되어 주신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죄인의 신분을 넘어 하나님의 양아들로 여겨주심을 받을 뿐 아니라, 훗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십자가 사건의 최종 결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사랑이다. 이 사랑을 우리는 정녕 알고 있는가?

#3. 적용 및 결단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천부장으로 시작해 천부장으로 끝나는 이 본문 안에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얼마나 생생한지 천부장이라는 단어조차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자. 천부장도, 바울도 우리가 쫓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진정 쫓아야 할, 기억해야 할 분은 우리의 이성 그 위에서 지금도 일하시며,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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