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사도행전 26장 1-8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26장 1-8절

텔레울로스 2018. 9. 3. 19:16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1. 관찰: 본문 요약
아그립바 왕은 현 상황에 대해 바울에게 변명을 요구한다. 이에 바울은 자신 앞에 선 자가 다름 아닌 유대인의 삶을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이라는 점에 있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오늘의 본문은 4-23절에 이르는 긴 변명 중에서도 전반부를 다룬다. 특별히 이 전반부 또한 크게 2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두 번째는 자신이 고발을 당한 이유에 대한 것이다.


#2. 해석: 본문 연구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변명은 변명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기회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장에 있던 자들에게 자신의 난처한 입장을 호소하지 않고, 복음을 믿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8). 이 안타까움은 아그립바와 유대인에게 향하는 그의 말투에서 그대로 묻어나온다. 3절에서 그는 아그립바에게 말했다.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고소당한 이유를 약속(6)’소망(7)’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것들은(문맥상 동일하다) 자신 뿐 아니라 교리 상 유대인들도 동일하게 바라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2가지를 말하고 있던 셈이다. 아그립바도 유대인(유대교)에 대해 잘 알고, 유대인들도 자신이 말했던 그 약속(소망)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 하지만 본문의 마지막 절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의 진의가 드러난다.
8절을 한 번 주목해보자. 앞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그러니까 한 사람 앞에서 변명 중이었는데 8절을 보면 갑자기 여러 사람 앞에서 변명하듯이 말하고 있다. 당신들은 여기에서 말하는 당신이란 아그립바 왕 이외에, 문맥의 흐름상 버니게, 베스도 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고위급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아그립바 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앞서 말했던 바울의 말과 함께 생각해볼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들은 그 누구보다 유대인에 대해, 그리고 유대교가 말하고자 하는 소망에 대해 잘 알고는 있으면서 도대체 왜,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지 못하는 것인가?” 분명히 이론적으로 알고는 있으면서 왜 믿지는 못하느냐는 것이다!

불편하겠지만 바울의 이 날카로운 질문을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성경을 그냥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 믿고 있는 것인가?” 만약 불신자나 새 신자가 성경을 지식적으로나마 알고 있다면 그 자체로 귀한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는, 그리고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후자여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인정하기 싫지만 이 질문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우리의 모습을 보게 만든다. 창피하지만 우리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에 우리는 부끄럽지만 빨리 자신의 현실을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정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전자의 모습에서 떠나 후자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간구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왜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 된 현실은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사실 거듭난 우리가 믿지 못한다는 것은 진정 믿지 못한다기보다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을 능력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인데, 하루하루 성령이 아닌 죄성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다보니 우리는 믿음 없는 자처럼, 그리고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우리의 모습이란 말인가?


#3. 적용 및 결단
동남아시아만 가도 많은 현지인들이 한국 사람들을 보면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한국인의 모습을 묘사하곤 한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너무 바쁘다. 그리고 그 바쁘다는 이유 혹은 핑계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조차 빼앗아 버릴 뿐 아니라, 그러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니 교회는 많고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기도하는 자는 적고 말씀의 깊이 있는 선포는 현저히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다시금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아니, 본래 그리스도인은 능력 있는 자를 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은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자. 앞서 말했듯이 본질을 찾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말씀의 깊이 있는 묵상이 필요하다. 형식적인 기도와 피상적인 말씀묵상도 안하는 것보단야 낫겠지만, 지금까지 동일하게 해 온 이러한 패턴 속에서 더 이상 회복이라는 단어를 결코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다시금 나아가자. 우리의 본래의 그 자리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우리의 가슴은 다시금 성령으로 충만해질 것이며 그렇게 바라는 회복의 은혜를 맛보게 될 것이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26장 13-18절  (0) 2018.09.05
사도행전 26장 9-12절  (0) 2018.09.05
사도행전 25장 13-27절  (0) 2018.09.03
사도행전 25장 1-12절  (0) 2018.08.31
사도행전 24장 24-27절  (0) 2018.08.3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