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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12-26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장 12-26절

텔레울로스 2018. 9. 27. 21:14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바로 전 부분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루며, 2장의 시작은 바로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승천과 성령님의 임재사이에 어떤 일이 있던 것인가?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 부분을 말하고 있다. 14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들 뿐 아니라 여자들과 예수님의 형제들까지 약 120명의 사람들이 모여서(15) 했던 것은 바로 기도와 간구였다(14). 그런데 갑자기 그 가운데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 제안했던 것은 구약에서 말하는 예언에 따른 사도의 선출이었다. 흐름으로 볼 때, 기도 중에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문맥의 흐름상 성령님께서 임재 하시기 전에 공석이 된 사도의 수를 채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합당한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것이고,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한 뜻을 이루려고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는 것인가? 비록 본문에서는 사도라는 자리에 한정 짓고 있지만, 하나님께 귀하게 쓰인 받은 자들의 자격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며 교훈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은 22절에 잘 언급되어 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하거늘 (1:22)

 

사도의 자격 2가지 중에 먼저,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 당시의 모습을 생각할 때, 예수님의 제자는 공식적으로 12명이었으나 그 이외 예수님의 가르침을 쫓아다닌 사람 또한 있었을 것이다. 물론 있으니까 이렇게 후보자가 2명이 나왔을 것이다. 이들은 비록 제자들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열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쫓은 자들이었다. 자신의 삶을 내려놓으면서까지 그리스도를 쫓아다니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려 했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열정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다 아는 바와 같이 부활하심을 반드시 증언해야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쫓아만 다닌다고 끝이 아니다. 단순히 교회만 다닌다고 끝이 아니다. 받은 가르침으로, 받은 말씀으로 삶 가운데 그것을 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으로만 알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 알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이라는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증인이 모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분을 전할 수밖에 없는 사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한 사람,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서 있어 심각한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 같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주일 성수로 그 사람이 진정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섬김의 자리에 있기만 하면 진정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선행을 한다고 그 사람이 진정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깨달은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구원해주신 주님께 더 감사할 수밖에 없고 그 주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손가락에 피가 나서 약을 발라준 양호선생님과 물에 빠져 죽기 직전에 구해준 구조대원 중에 누구에게 더 감사해 하겠는가? 당연히 구조대원일 것이다.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더 감사의 깊이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도 이와 같다. 자신이 얼마나 극심한 죄인인지, 죽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주님을 향한 마음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점에서 죄인 됨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 곧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두고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우리는 얼마나 죄인 됨을 깊이 깨닫고 있는 것인가? 18장을 보면 우리에게 참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이 등장한다. 성전에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율법대로 살아감을 의로 여기고 구별되었음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세리는 어떠한가? 자신의 모습을 알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8:13)” 이것이, 바로 진정 죄인 됨을 깊이 깨닫는 자의 모습일 것이다. 이 말씀 앞에 우리는 과연 언제 가슴을 쳐봤으며, 죄인이라고 고백해봤는가? 그것이 먼 일이라면 오늘, 아니 지금 주님 앞에 나아가서 고백해보자. 그리고 자신의 죄인 됨으로 괴로워하는 자가 있다면 주님께 감사하자. 괴로움이 크면 클수록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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