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사도행전 8장 26-40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8장 26-40절

텔레울로스 2018. 2. 23. 10:15

사도행전 8장 26-40절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오늘 성경 말씀에서는 복음을 깨달은 자, 즉 그리스도인에게 그를 향한 하나님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있다. 앞에서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하며 마술사 시몬을 만났다면, 뒤이은 오늘의 본문에서는 주의 사자의 인도하심에 따라 광야에서 특정한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 인물을 만나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인 빌립에게 몇 가지 뜻을 드러내신다.

26절에서 말하듯이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성에서의 사역을 마무리 짓고 주의 사자에 의해 광야로 인도를 받는다. 여러분 광야란 어떤 곳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척박한 땅이다. 광야라는 이 두 글자만 들어도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는 종 빌립 집사를 그곳으로 부르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종을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뜻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 빌립을 왜 광야로 부르셨는가? 바로 추수할 일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렇다. 사실 이 질문은 틀렸다. 만약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꾼이라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일꾼으로 부르셨는가?” 그렇다면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사실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라는 명제보다 중요한 것은 부르셨다라는 사실이다. 만약 부르셨다면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그곳이 바로 나의 추수 밭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현실을 부정하려 한다. 힘든 그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방이라도 떠나야만 할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나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모른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곳이 당장 내 삶을 힘들게 하는 고통의 절벽 끝일지라도, 만약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곳은 고통의 절벽 끝이 아니라 바로 삶의 선교지라는 사실이다. 오늘 주의 사자가 빌립을 인도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특별히 복음을 진정 깨달은 자들을 추수할 일꾼으로 그곳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빌립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가보니 그곳에 에티오피아의 고위급 인사가 있었다. 그는 왕의 재정을 다루는 사람으로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방인인 그가 예배를 드리고 예루살렘에 다녀왔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빌립에게 명해 성경을 보고 있는 내시에게 가까이 나아가라고 한다. 31절에서 내시가 빌립에게 한 말은 빌립이 주의 종으로써 그 자리에 왜 오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말해준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나에게 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시오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빌립은 입을 열어 이사야서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복음을 전한다(35). 더 나아가 내시에게 세례까지 베푼다. 예루살렘까지 가서 예배를 드렸던 내시라 할지라도 아마 이방인이며 고위직에 있다 보니 공개적으로 세례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빌립과의 만남은 세례받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례를 받게 되는 주된 동기는 복음을 깨닫게 됨에 따른 은혜라고 생각이 된다. 이처럼 세례란 그냥 받고 싶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누가 받으라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주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깨닫게 된 자가 받는 것이다. 일평생 단 한번 받을 수 있는 세례는 주의 자녀 됨에 따른 인증과도 같기 때문이다. “000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는 인증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는데 성령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빌립을 이끌어간다. 즉 빌립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옆에 있던 내시가 놀라지 않았을까? 자기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던 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깨달은 자에게 원하시는 두 번째 뜻을 발견할 수 있다. 본문을 보면 빌립이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해 내시가 놀랐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기쁨으로 계속해서 자신이 가던 길을 갔다고 기록한다. 즉 그는 표적과 기사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자신에게 부어진 은혜에 반응한 것이다. 사도행전의 기자 누가는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표적과 기사가 아닌 복음을 깨달은 것에 대한 기쁨의 반응. 이러한 내시의 반응이 진정 복음의 은혜를 맛본 자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그 은혜란 나에게 무엇이 주어졌는가, 내 기도가 응답되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복음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게 빌립은 세례를 베풀고 성령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에 따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 자리를 뜨게 된다. ‘자리를 뜨다라는 표현이 성경적으로 어색하지만, 이 표현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게 빌립은 아소도라는 도시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지나는 성읍에서 복음을 전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을 향한 세 번째 뜻을 발견하게 된다.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고 갑자기 사라졌다. 세례를 베풀고 다른 도시로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즉시 사라졌다가 아소도라는 도시에 나타났다. 왜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곳을 떠나게 하셨다가 다른 도시에 나타나게 한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하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지나간 자리에 오직 복음만이 남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세례를 베푼 그 장소에 남아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세례를 받은 내시 혼자였고, 이 내시 또한 사라진 빌립을 찾기보다 세례를 받고 난 후 복음의 기쁨에 집중하고 있었다. 즉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결국 복음이라는 사실이다. 아마 사도행전의 기자 누가는 이점을 드러내고 있던 것 같다. 사도행전의 특징 중 하나는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역사적으로 집필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실에 근거해서 썼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는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오롯이 복음이라는 사실이다.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9장 10-19a절  (0) 2018.02.23
사도행전 9장 1-9절  (0) 2018.02.23
사도행전 8장 9-25절  (0) 2018.02.23
사도행전 8장 4-8절  (0) 2018.02.23
사도행전 8장 1-3절  (0) 2018.02.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