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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장 51-53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7장 51-53절

텔레울로스 2019. 8. 25. 23:30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일곱 집사로 세워진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지혜와 성령으로 자유민들과의 논쟁을 능히 승리하였다. 이에 자유민들이라 불리는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가만두지 않고 사람을 매수에 신성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공회로 끌고 와 가운데 세운다. 그리고 다시 거짓 증인을 세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죄인으로 만들려 한다. 긴급하면서도 긴장되는 분위기 가운데 스데반은 결코 떨지 않고, 오히려 천사와 같은 얼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오늘의 본문은 스데반의 기나긴 설교를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맨 뒷부분, 마무리하는 시점에 자유민들과 공회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문 51-53절의 모든 내용에서 스데반은 유대인들을 고발한다. 상세하게 살펴보면 아주 세밀하고도 예리하다. 51절에서 그는 유대 지도자들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한다. 9:6-8에서 동일하게 나오는 이 고발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할 당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강력하게 꾸짖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말한다.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오는 날부터 광야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려 하셨다.” , 멸망당해도 싼 존재라는 것이다. 이 꾸중을 듣는 자를 두고 모세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한 것이다. 다음으로 스데반은 누가 진짜 유대인인지를 놓고 이야기한다. 8:28-29에 의하면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표면적 유대인이 진짜 유대인이 아니다. 마음에 할례 받는 자가 진짜 유대인이다. 그런데 스데반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공회 앞에 있는 그 많은 지도자들 앞에서 너희는 중생한 유대인이 아니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스데반은 그들보고 믿음이 없는 자라고 말한다. 성경은 말하고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10:17)” 귀가 막혀 듣지 않는 자에게 믿음은 없다는 것이다. 스데반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적들의 진영 한 가운데에서 이렇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끝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발은 출애굽을 시작으로 남유다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잘못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매번 죽여왔을 뿐 아니라 그들이 말한 의인이자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도, 결국 이스라엘과 같이 동일하게 죽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유일무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주인이 보낸 참된 메시아조차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를 죽인 배은망덕한 살인자라는 사실을 스데반이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마지막 53절은 하나님의 율법을 삶의 지표로 삼는 너희들이 그 참뜻을 알지 못한 채, 너희의 전통에 갇혀 눈에 보이는 것만을 행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스데반의 고발은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그 안에 엄청난 역사적 사실과 근거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유대 지도자들은 스데반을 결코 가만 두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이후의 상황은 다음 문맥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스데반의 고발은 일정의 흐름을 타고 있다. 즉 단순히 눈앞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감정적으로, 무작정 쏟아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스데반은 그들을 고발함에 있어 구약의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시작을 했다. 그리고 신약의 그들의 직접적인 모습. 그리고 현 시점에서 바로 뒤에 이어지는 모습은 스데반의 죽음, 즉 그들이 다시금 주님께서 보내신 사역자를 죽이는 장면이 이어진다. 결국 유대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시작해 지금, 그리고 앞으로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반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반복적인 삶을 결코 끊지 않고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모습가운데 우리의 모습을 봐야 한다. 우리의 삶을 지금까지 어떠했는가? 구원받았다는 우리들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바람직하지 않는 모습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마음에는 더러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모습만 보았을 때 마냥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답이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인가? 조상들의 악습을 반복하는 이스라엘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삶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을 시점으로, 지금 이 말씀을 듣는 것을 시점으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게 할 것인가?

 

다음 문맥에서 결국 스데반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누가가 그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아주 영광스러운 죽음이다. 이처럼 스데반은 자신의 생명을 드림으로 우리를 살리셨던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명을 던지며 유대 지도자들을 살리려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들도 예전과 같이 계속해서 성령을 거스르려 합니까? 예수님을 다시 죽인 자가 되려 합니까?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가 되려 합니까?”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이스라엘처럼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을 받고 돌이켜 회개하여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더 나아가 스데반과 같이 예수님의 죽음까지 닮아가는 자가 될 것인가? 스스로 답을 내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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