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일기] 고난 본문
한 목사님의 불편할 정도로 과격한 표현이 드러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이후 혹자는 '표현이 너무했어...'라고 하며, 또 누군가는 '그래도 은혜가 있었다.'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 분의 삶의 과정에서 드러난 진솔한 선포에서 감동이 있었다.
물론 나에게 허락하신,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임했다는 것이 결론이지만 말이다.
"고난"
'욥기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아마 이 질문에 대다수가 동일하게 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뻔하디 뻔한 주제를 다루시려나?'라는 생각이 전제로 깔렸지만,
요즘 한참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고 있는 나에게 일단 '듣고 보자'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잡았던 것 같다.
그러나 결코 '뻔하디 뻔한'이 아니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일정 부분 과격한 표현과 혹 잘 모르는 성도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을 정도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도 있었지만,
설교자는 욥기의 주제를 '고난'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강력하게 선포했다. 그렇다. 나도 놓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난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전제를 두고 말이다.
이 상황에서 이러니 기분 좋고, 저 상황에서는 저러니 기분 상하고.
이러한 모습이 나에게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 스스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반)따지듯이, 그냥 그렇게 기도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주권을 오롯이 무시했던 내 모습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속상한 나머지, 이 부분을 간과했던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눈물샘이 폭발했다.
그것은 설교도 설교지만,
이후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에 한 집사님의 아내와 아들이 사고가 나서 기도를 급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아내 집사님은 뇌출혈로 급하게 수술에 들어갈 수도 있었고, 세살배기 아기는 뼈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아들생각이 나서 그랬나?
그것도 있었겠지만 그냥.. 이처럼 불쌍하고 더 힘든 사람이 있는데.. 라는 마음인 것 같다.
그 자리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나보다 더 힘들고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이 있는데 난 무엇을 하고 있나 말이다.
물론 지금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내가 스스로 이성적으로 정리한 답이 있고, 또 다른 답은 말없이 그냥 안아주는 것이다.
어쩌면 후자가 더 예수님을 닮은 자의 모습인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공동체를 그렇게는 안고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모르겠다.
다만 여기에서 나는 여전히 2가지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되물으려 한다.
1)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며,
2)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크게 와 닿은 이 2가지 감동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거룩하신 주님, 여전히 어리석은 저에게 답을 주옵소서.
깨닫게 하옵소서. 행동하게 하옵소서.
말씀하여 주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기] 믿음과 이성 (0) | 2021.04.15 |
---|---|
[일기] 여전히 (0) | 2021.04.13 |
[드라마 시청] 이것이 진정... (0) | 2021.01.18 |
[일기] Solus Christus (0) | 2020.10.13 |
[일기] 깨달음 (0) | 2020.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