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요한복음 9장 13-34절 본문

묵상

요한복음 9장 13-34절

텔레울로스 2021. 4. 17. 11:55

9:13 [비뚤어진 바리새파 사람들] 그들은 전에 눈먼 사람이던 그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9: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

 

9:15 바리새파 사람들은 또다시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바르신 다음에 내가 눈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9:16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말하기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였고, 더러는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c표징을 행할 수 있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의견이 갈라졌다.(c 예수의 신성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기적(그리스어 세메이온))

 

9:17 그들은 눈멀었던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입니다."

 

9:18 유대 사람들은, 그가 전에 눈먼 사람이었다가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마침내 그 부모를 불러다가

 

9:19 물었다.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당신의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9:20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9:21 그런데 우리는 그가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또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다 큰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가 자기 일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9:22 그 부모는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d예수를 e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대 사람들이 이미 결의해 놓았기 때문이다.(d 그, '그를' e 또는 '메시아'. 그리스어 그리스도와 히브리어 메시아는 둘 다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뜻함)

 

9: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그 아이가 다 컸으니 그에게 물어보라고 말한 것이다.

 

9:24 바리새파 사람들은 눈멀었던 그 사람을 두 번째로 불러서 말하였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죄인이다."

 

9:25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9:26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네게 한 일이 무엇이냐? 그가 네 눈을 어떻게 뜨게 하였느냐?"

 

9:27 그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하였는데, 여러분은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다시 들으려고 합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9: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말하였다. "너는 그 사람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9:29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9:30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9:31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압니다.

 

9:32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하였다는 말은, 창세로부터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9:33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9:34 그들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완전히 죄 가운데서 태어났는데도,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그리고 그들은 그를 바깥으로 내쫓았다.


"아는 지식"

 

#1. 관찰

본문은 병 고침 받은 자와 바리새인간의 대화를 그리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안식일’이기 때문.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율법의 주제와 맞부딪쳤기에, 그들의 눈에는 병 고침을 받은 자가 보이지 않고 누가 그를 고쳤느냐가 중요했다. 바리새인들은 서로 논쟁하며 예수에 대해 판단을 하려했고, 의견이 갈라지자 당사자, 심지어 당사자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니 그의 부모, 그럼에도 답이 안 나오자 다시금 당사자에게 물었다. 그들의 지속된 질문에 오히려 병 고침을 받은 자는 바리새인들의 권위를 의심했고,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은 그를 내쫓는다.

 

#2. 해석

본문은 요한복음에 흐르는 주제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틀 안에서 살펴야 한다(요 12:46). 성경의 질문을 뜯어보면 각 등장인물마다 ‘아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20절에 맹인이었던 부모는 말한다.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안다.’ 24절에 바리새인들이 말한다. ‘예수가 죄인임을 안다.’ 25절에 말한다.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본다.’ 맹인의 부모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고,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말하고 있고, 맹인은 결국 보게 해주신 분이 예수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살펴볼 때, 맹인의 부모는 주님을 모르는 지극히 세상 사람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고 맹인은 주님을 경험하여 이제 알아가는 구도자, 초신자의 반열에 올라선 자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바리새인은? 안타깝게도 바리새인은 성경이 말하는 모습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주님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 심지어 본인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시 그들을 정죄해버리는 자를 말할 수 있겠다.

과연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세상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가, 주님에 대해 아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우상의 모습을 알고 있는가?

본문 바로 다음 단락에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바로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나는 보게 되었는가? 맹인이 되었는가?

 

#3. 적용

사실 위 본문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하나하나 뜯어본 게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그 인물 안에 다양한 형태의 우리네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습에 가장 가까운가? 부끄럽게도 맹인이 아닌 두 인물과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맹인의 부모처럼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온 모습도 있고, 바리새인들처럼 실제로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내가 만들어낸 예수의 모습을 두고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부분도 많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나의 한계를 보게 되고, 그러하기에 이 말씀이 오늘을 내가 살아가야 하는 경각심의 교훈이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바라기는 어제부터 읽고 있는 ‘죄 죽이기’의 서적의 도움을 받아,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매일 하나씩 청소하며 내 마음 속에 진짜, 아니 본래 ‘예수’에 대한 지식으로 가득 채워야하겠다. 그것만이 내가 목회자로, 아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일 것이다.

 

거룩하신 주님, 오늘도 위 말씀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이 인물의 어리석음 속에 비춰진 저의 모습을 주님 앞에 고백, 인정하며 회개하오니 용서하시고, 요즘 주님 주신 마음가지고 새롭게 살아낼 수 있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내일은 주일에, 다음 주는 새벽+수요가 있어 여러모로 빡센(?!) 한 주가 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아내와 아들이 또 돌아오기에 더더욱 깨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한 집의 가장으로 더 긴장하며 깨어 있되, 그 가운데 주님 주신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성령으로 역사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13장 14-17절 (새번역)  (0) 2021.04.28
요한복음 11장 54절  (0) 2021.04.27
요한복음 6장 22-36절  (0) 2021.04.16
요한복음 3장 31-36절  (0) 2021.03.25
누가복음 20장 41-44절  (0) 2021.03.2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