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말씀] 21.07.14 수요예배 '머리털 신앙' 본문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처음으로 시작된 비대면 수요예배
오늘은 캐릭터 확실하신 동역자, 최목사님의 설교였다.
본문은 너무 흔하디 흔한 사사 삼손, 그리고 제목은 '머리털 신앙'이었다.
사실 아직 나에겐 쉽지 않은 영역의 대중적인 본문 설교.
오늘 설교도 본문만 두고 볼 때는 '뻔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집중하며 듣다보니.. 어느새 깊은 몰입감으로 푹 빠져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최목사님의 핵심은 결국 '머리털은 상징일 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사실 삼손은 들릴라와의 사건 이전에 나실인의 규례를 이미 범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가 어떠한 이유로 자신만만했고 여전히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결국 '머리카락'이 여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길러지고 있기에,
이것은 안도삼아 계속해서 그것 하나만을 믿고 살아간 것이다.
실제 여호와의 영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반문한다. "과연 우리들에게 삼손과 같은 머리털 신앙은 없나요?"
이 질문은 나에게 감동까진 아니더라도, '이렇게도 풀어갈 수 있구나!'라는 충격이 있었다.
역시.. 묵상포인트는 참 다양하다.
(그리고 요즘 최목사님께서.. 물이오르신 것 같다는 마음까지..^^)
그러나, 말씀을 들으며 '급'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바로 메모모드).
사실.. 이미 나실인의 규례를 범하고 충분히 하나님의 영이 떠나 능력을 주시지 않았어도 됐는데,
그렇다면, 어쩌면 삼손은 그 전에 자신의 한계를 진즉에 인정하고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던 건가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실인 또한 어쩌면 삼손에게만큼은 의미 없는 정체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굳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내린 답은 지극히 이스라엘, 즉 우리를 배려했다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그 당시 사사를 구했던 이스라엘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믿음의 수준에 맞게, 보이는 사사를 보내주신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사사 삼손의 이야기 속에서의 핵심은 '성령의 임재'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에 능력을 발휘했던 그처럼,
결국 오늘날 나실인이든 어떠한 직분을 떠나(물론 직분이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령의 임재가 아닐까?
최근에 멘토선교사님과의 통화가 아른거린다.
한창 '부흥'에 관해 묵상하고 있는 나에게 '성령의 은사'를 강력히 구하라고 하신 선교사님.
여러모로 오늘 본문과 오버랩되는 지금,
먼저 본문을 통해 새롭게 도전을 받고,
나 또한 당연한 본문을 다시금 돌아보며 '성령의 임재'를 구해본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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