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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신학자

텔레울로스 2022. 11. 17. 16:18

한창 사역자로 달리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멈춰보니 순간 '멍~'했다. "지금까지 난 무엇을 한 것인가?" 그러면서 이전의 삶을 두고 비교해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정말 허무했다. 답답했다.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이런 저런 서적을 뒤지며 무엇인가를 하려했다. 그때 집중하게 된 서적은 백금산목사님의 "평공목 독서모임"이었다.

 

이전부터 평소에 들고 다니며 많은 유익을 누리곤 했었으나, 한동안 잊고 들고만 다녔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다시 한 번 펴보며 무엇을 해야 할 지, 무엇을 봐야 할 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서적을 뒤지며 내 현실과 맞닿아 구입하게 된 서적, "목사 신학자" 당장 내겐 신선한 깨달음,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강한 도전이 필요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본서를 통해 거룩한 부담과 열망을 품을 수 있었다.

 

두 저자는 한 교회에서 사역하는 (우리나라 언어로)담임목사이자 행정목사의 관계이다. 물론 나 또한 이 사실을 거의 서적 마지막 쯤 읽었을 때야 할 게 되었지만, 정말 신기한(?!) 관계이다. 어떻게 이 관계에서 본서를 공동집필하고 또한 이렇게 누군가의 추천을 받을만큼 권위를 얻게 되었을까. 본서를 정독하며 내린 답은 저자들의 분명한 목적뜨거운 열망 때문이러라.

 

본서는 그저 누군가를 도전할 만한 가벼운 류의 준비로 집필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저자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교부시대부터 객관적이며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이루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역사적으로 목사신학자의 흐름을 파악하며, 오늘날 목사와 신학자의 역할이 이분화되었음을 한탄한다. 그리고 이전에 존재했던 교회적 신학자로서의 "목사 신학자"가 회복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아래는 저자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핵심 메시지 일부이다.

목사들은 더 이상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교회의 믿음을 건강한 방식으로 형성하는 데 필요한 신학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 과거와는 달리 이제 우리에게는 목회적 소명을 신학적 소명과 나란히 두는 목사 신학자들이 더 이상 없다.기독교 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 신학은 이런 사람들(평신도)이 삶에서 믿음의 수고를 해 나가도록 지원하는 수단으로 존재한다. ⋯ 교회적 신학자(목사 신학자)는 교회를 위한 기획의 목적을 매우 분명한 용어로 만들어 낸다.신학적 이론과 논리적 분석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이 직면하는 실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자적 외침을 추구한다. ⋯ 교회적 신학자(목사 신학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식적이고 외적으로 규정된 이유 너머에서 움직이면서, 표면 아래를 깊이 파서 인간의 갈망과 의지를 낳는 핵심적 신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다. 그(어거스틴을 예로 들며)는 자기 마음과 자기가 목양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더 잘 이끌기 위해 스스로를 이해하기를 열망한다. ⋯ 어거스틴이 우리 자신에 대한 잘못된 사랑과 헛된 우상 숭배의 미로에서 빠져나오도록 잘 인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목사 신학자가 회복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그 필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외쳤던 것은 목사 신학자가 갖춰야 할 신학적인 지식이 단지 (목사 신학자)개인이나 학계를 위한 유익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에 직접적인 답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 결국 목회로의 부름을 받은 목사신학자에게 있어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두고 볼 때 목회를 목적으로 하는 목사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신학자로의 분리가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리된 만큼 그 분야에서의 전문가로 설 수 있다는 이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명확한 분리로 인해 (저자들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여)목사로서 갖춰야 할 신학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존만 하는 것은 이 시대의 문제가 아닐까? 

 

바로 이러하기에 "목사 신학자"가 필요하다. 아니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 또한 이에 적극 동의하며 하나님께 묻게 된다. 능력적으로 한참 부족하다못해 인격적으로도 미숙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들이 말했듯, "목사 신학자"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부르심은 아니기에 나 또한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저 지금의 길을 정신차리고 걸어야 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왜 본서를 접하게 하셨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물음표를 던질 뿐이다. 

 

거룩하신 아버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 신학자가 아니라, 목사로써도 신학자로써도 그 어느 것도 온전히 다 감당할 수 없는 저이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요. 그 누구보다 주님을 향한 열망과 갈망과 소망은 가득한데, 이를 어떻게 주님께 드려야 할 지 여전히 물음표만 가득할 뿐입니다. 분명히 앞으로 한 걸음을 떼야 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떼야 할 지 방향도, 자신도 없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시사 성령의 조명하심 가운데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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