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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결국 관계

텔레울로스 2023. 7. 4. 10:12

어떠한 결론에 다다르든 인간의 삶은 영원하다. 그런 점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 영원함 앞에 한 파편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면서도 아는 것처럼 살아가기 어려운 것은 당장 눈앞의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아직 완전하게는 아닐지라도,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다고.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 안에서의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앙생활을 통해 아직 희미하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 주제는 신앙생활과 직결되기에 실질적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성도로써의 사명과도 맞닿아 있기에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신칼빈주의에 영향을 받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조금 과한 마음을 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곤 한다. 대표적으로 창 1:28을 문화명령으로 받아 세상을 ‘변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창 1:28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유인즉, 첫째 아담이 실패한 모든 사역은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도는 첫째 아담이 실패한 문화명령의 대의를 이어받아 세상을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불가능한 일을 행할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신 예수님의 사역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가운데 누리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다면 성도의 사명이 너무 가벼워지는 것 아니야?’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언급되다시피, 인간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지 위대한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쉬운 말로 바꿔보면, 관계가운데 쌍방이 서로를 기쁨으로 누리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신앙생활의 핵심이 관계이고, 이 관계는 사명과도 직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새벽 말씀(딛 3:1-7)을 묵상하며, 이 부분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여러 자리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자로, 과연 나는 이 말씀대로 살아왔는가,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 살아내고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했는지, 바로 그 모습을 통해 세상에 복음을 선포했는지. 그러나 말씀을 준비하는 자로 먼저 그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함이 내 심령 깊은 곳을 찔렀다. 아니,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함이 문제가 아니라, 되레 엉뚱한 곳에 감정을 토해내며 살아온 것 같아 이렇게 글을 통해 진솔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지금의 상황이, 나의 상태가 뼈아프지만 이렇게 깨닫게 하신 것 또한 지극히 은혜이기에 은혜를 은혜로 받아 다시금 일어나길 원한다. 다시금 엉뚱한 것이 아닌, 옳은 것, 바른 것에 집중하려 한다. 조금 늦었지만, 말씀을 선포한 이후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어 다시금 살아내 보려 한다. 결국 이루실 것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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