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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42-52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3장 42-52절

텔레울로스 2018. 3. 25. 15:25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앞서 바울은 설교를 통해 약속의 하나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며, 안디옥에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멸망당하는 자가 아니라 구원 얻는 자가 되기를 소망했다. 이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다음 주에도 또 한 번 선포해줄 것은 요청한다. 이후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기 시작한다. 한 주가 지난 안식일이 되자 안디옥에 있던 대다수의 시민들이 바울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모였다. 이를 지켜본 유대인들은 무리들의 모습에 시기에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모독하기에 이른다. 이에 바울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모독함으로 맞대응하지 않고, 그들의 문제 있음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회심사건 때 받았던 말씀을 인용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있음을 선포한다. 이를 듣게 된 많은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실제 그 말을 듣고 주님께 돌아왔다. 그렇게 주의 말씀이 안디옥 지방에 널리 퍼지자, 유대인들은 권위자들을 선동해 바울과 바나바를 내쫓고 만다. 그 가운데 이 두 사람은 여전히 불법을 자행하지 않고 쿨하게 그곳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떠난다. 마지막 절은 이 두 사람의 모습이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다고 묘사한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저번 말씀에 이어 한 맥락으로 보는 것이 좋다.

바울의 설교에 그 도시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이자, 유대인들은 바울을 모독하게 되었다. 이때 바울은 유대인들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자신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받았던 말씀을 나눈다. 그리고 이어지는 48절은 바울이 받았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부르심에 따른 계획하심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누군가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이 진실로 회개를 한 것인지 혹은 분위기나 상황에 이끌려 회개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우리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한 번의 모습과 행위로 그 사람의 그리스도인 됨을 진정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특별히 48절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결과적으로 이 구절은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적 말씀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두 사람은 비록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안디옥에서 쫓겨나게 되었지만, 52절과 같이 기쁨과 성령의 충만으로 그곳을 쿨하게 나올 수 있던 것이다.

 

저번 말씀에서 우리는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두고 우리가 저주가 아닌 축복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을 언급했다면, 오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직접적으로 경험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뿐 아니라, 반드시 성취되는데 그것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축복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알더라도 그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에서 보면 종종 열심히 사역을 하거나 직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기쁨을 얻지 못할 때가 많다. 왜 그런 것인가? 말씀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채, 지식적인 것으로 계속 하다 보니 육신의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다. 언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다면 그에 따른 모습은 자연스럽게 52절에서 드러나는 제자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들의 모습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시기가 일어나 그 뒤의 못된 행위를 벌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게 된 두 사람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해 기쁨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결국 오늘의 말씀도 두 가지 요소로 나뉜다. 말씀을 경험했느냐, 아니면 말씀을 알기만 하느냐. 전자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매일 매일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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