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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11-15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6장 11-15절

텔레울로스 2018. 4. 21. 20:10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바울 일행은 환상을 통해 자신의 뜻을 계시하신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11절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그들은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까지 이르게 된다. 누가는 12절에 이 빌립보를 두고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자 로마의 식민지라 소개한다. 사실 빌립보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문자 그대로 본다면 단지 역사적인 서술에 불과하겠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라 함은 바울에게 있어 큰 기대감과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하나님에 대한 열의가 가득했던 바울에게 있어, 강력한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던 발걸음이었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로마의 식민지라 함은 억압과 영적 침체가 있는 곳이다. 아마 바울의 눈에 비치는 빌립보는 어둠이 가득한 곳에 빛이 필요한 도시였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왜 바울을 그곳으로 보내셨는지 복선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바울은 수일을 유한다. 분명 그는 빌립보에 도착해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에 보내신 확신은 있는데, 그리고 도시의 분위기 또한 복음이 필요한 곳임이 분명히 느껴지는데, 아직 자신을 통해 그 어떤 일들을 이루시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곳에 머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13절에서 자세히 말해준다. 그는 빌립보에서 맞이하는 안식일에 기도할 회당을 찾으러 나섰다. 여기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누가는 왜 굳이 바울이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으러 나갔다고 한 것인가? 수일간 머물면서 기도하지 않다가 갑자기 안식일이 되었으니 기도하러 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마게도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아는 바울로써 매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13절을 이렇게 기록한 것은 단지 이 날이 특정한 날임을 알려주려 한 것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여쭈었던 바울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 것이다. 갑자기 기도하기 위해 나갔다가 우연찮게 강가에 있던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게 아니라, 평소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추구했던 바울이 안식일인 어느 날, 기도의 장소를 찾다가 강가에 있던 여자들을 만나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때,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라는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듣게 된다. 성경을 보면 그녀는 이미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볼 때 아직 중생하지 않은, 구도자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무튼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셔 바울의 복음을 그대로 받아 영접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다. 성경은 단순히 루디아 한 사람 뿐 아니라, 그의 집이 다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진정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감사해 바울 일행을 섬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오늘의 본문에서 드러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복음을 가진 자로써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교훈을 삼으려 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빌립보로 나아간 바울은 그곳에서 자신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림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분명 확신이 있었다. 자신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를 잠잠히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여지없이 때가 되자, 그를 통해 역사하셨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 앞에 우리를 돌아보자.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고 있는가? 매일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소망가운데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당장 나아지지 않는 나의 환경에 조급해하며, 당장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음에 불평하지는 않는가? 분명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실 것들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항상 우리는 근심걱정의 한 가운데 서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꼭 바울과는 정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금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이 세대를 보면 날이 갈수록 더 악해지는 것 같다. 그만큼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 것이다. 혹시 환난 가운데 서 있는가? 이 환난은 우리가 넘어질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과정이 불과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하게 될 때, 그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할 것이다. 이는 마치 본문에서 바울에게 나타났던 모습과 동일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바울,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구하신 것과 같이 우리가 인내할 때, 말씀을 붙들고 꿋꿋하게 버티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그렇게 구원받은 루디아는 감사의 마음으로 바울 일행을 섬기려 했다(15).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하늘의 보화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마 6:33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했더니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화끈하신 분이시다. 구원을 주실 뿐 아니라, 자신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마지막에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까지 채워주시는 것이다. 이거 저거 조금씩 주시고 마시는 분이 아니라, 몽땅 다 몰아주시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약속의 말씀, 소망의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분.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으로만, 문자적으로만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울처럼 그렇게 말씀 붙들고 인내할 때 주시는 많은 축복들을 실제 누려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 말씀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로써 하나님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화끈하게 모든 것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처럼 우리 또한 하나밖에 없는 인생,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화끈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자신보다 귀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것.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이 비록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소원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우리의 이러한 소원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면 이보다도 값진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 더러운 죄인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 고백대로 살아갈 능력이 결코 없사오니 성령하나님, 은혜를 허락하시어 매일 고백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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