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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1-4절 본문

묵상/44. 사도행전

사도행전 18장 1-4절

텔레울로스 2018. 5. 29. 23:55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떠나온 바울, 아직 동역자를 만나기 전으로(18:5) 그곳에 따로 연고가 있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랍비는 말씀을 강론하고 가르치긴 했지만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그렇게 함으로써 사례비를 받는다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기에, 랍비들은 생계를 위한 기술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이에 바울 또한 기술을 가지고 생계유지를 위해 고린도를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찾아간 곳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있던, 천막을 만들어 파는 곳이었다. 역사 자료에 의하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유대인으로써 고린도에 거주하기 전, 로마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 고린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들이 이주한 것은 단순한 이사의 개념이 아니라, 사실 피난의 개념이었다. 당시 클라우디오 황제는 로마에 자주 있던 유대인들의 폭동을 저지하기 위해 나름의 조치를 취했는데, 처음엔 그들이 모이는 자체를 금하다가 어느 시점에 되어 박해하며 추방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역사가는 유대인들이 일으킨 폭동이 메시아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당시 박해로 인해 이 두 사람이 고린도로 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들은 바울을 받아들여 함께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고용했다. 사실 이들은 바울을 만나기 이전부터 회심한 그리스도인들로, 특별히 로마 교회의 창립 멤버로 여겨진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게 바울은 그리스도인 부부와 함께 고린도에 거주하되, 안식일마다 회당으로 가 계속해서 말씀을 강론하며 그곳에 거주하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복음으로 권면했다.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2가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만남에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2차 전도여행을 다녔던 바울에게 있어 그동안 모든 과정 속에서 생계로 인한 어려움을 성경은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우리는 2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그동안 바울은 연보나 섬김 등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셔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둘째, 유독 고린도에서 생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만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들을 만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생계유지를 위한다는 목적 하에 귀한 부부를 붙여 주셨다. 이들이 왜 귀한 지는 이어지는 18:24-26과 롬 16:3-4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두 사람은 훗날 바울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내용을 볼 때(18:24-26), 고린도에 정착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떠나고, 그곳에서 함께 사역을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 아볼로를 가르쳤다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심지어 롬 16:3-4을 볼 때, 이들은 바울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들이 바울의 어떤 모습을 보았기에 이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던 것인가? 18:11을 볼 때 바울은 고린도에서 대략 16개월 정도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바울이 부부와 함께 살던 몇 주 후, 그들의 동역자가 고린도에 당도해 후원금을 가져와 바울은 생계유지를 떠나 복음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부부는 자신들과 함께 몇 주 동안의 일상의 삶과 17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던 바울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분명한 그리스도인임을, 사도임을 확신했던 것이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상식적으로 18개월 동안 알고 지냈다고 어떻게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라갈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그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이러한 그들의 확신은 (물론 부부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조건이 붙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18개월 동안 지켜봐온 바울의 모습에서 갖게 되었을 것이다. 성실하게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그의 모습, 매주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하며 복음을 제시한 그의 모습, 열정적으로 복음을 위해 살아간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드러내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러한 사도 바울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생계를 위한 목적으로의 만남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만남 속에서 생명까지 나눌 수 있는 동역자를 만나게 했다는 것과 더불어, 삶을 통해 바울이 참된 사도임을 드러내었다는 점 말이다. 이렇듯 사도 바울을 통해 드러내신 하나님의 뜻은 오늘날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 너무나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기억하자. 아무리 교회가 무너지고 세상이 득세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바울을 통해 일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이 말씀 앞에선 우리를 통해 일하실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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