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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eoulos

사도행전 18장 12-17절 본문

묵상/44. 사도행전

사도행전 18장 12-17절

텔레울로스 2018. 6. 1. 01:54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 가운데 계속해서 고린도에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바울. 오늘의 본문은 그 가운데 유대인들에 의해 고소되어 로마지방 법정에 출두하게 된 그의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유대인들이 당시 시민의 대표들이 아닌 로마의 지방관리에게 찾아가 신고한 것은 나름 머리를 쓴 것으로 보인다. 신약학자 F. F. Bruce는 시민대표들의 판결 같은 경우, 그들의 관할 구역 내에서만 판결의 효력이 유효할 테지만, 로마의 지방관리가 내린 판결은 그 지방 뿐 아니라 총독들이 있는 곳에서 충분한 영향이 미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고소에 바울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려 할 때,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되레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 없음을 설명하며 오히려 법정에서 내쫓아버린다. 고소했다가 오히려 본전도 찾지 못한 유대인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유대주의 무리들에게 공격을 당한다. 반유대주의자들은 로마 총독 갈리오가 보고 있는 곳에서 회당장 소스데네를 폭행한 것이었다.

 

법정 드라마 같은 이 장면에는 상반된 요소들이 발견된다. 법정 안에 있던 자들은 사실 로마 총독과 유대주의자들, 바울과 그 일행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난 회당장 폭행 사건은 그 당시 고린도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아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로마 총독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행동했음에도 총독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하는 그의 인격이 드러남과 동시에, 그만큼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고전 2:3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와 같이 18개월 동안 행했던 그의 전도(18:11)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대변한다.

고린도의 이러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기독교의 입장에서 살펴볼 때 상황은 영 달라 보인다. 물론 반유대주의 정서는 바울에게도 동일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선교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복음이 전파되는 데 있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에 있어 더 매끄러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비록 바울이 법정으로 불려간 것은 사실이나, 바울의 고소 내용을 들은 총독은 바울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전에 그를 무죄 처리해 버린다. 이러한 총독의 처결은 향후 10년 이내 기독교에게 있어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유대인들이 바울을 로마 총독 앞에 세운 것은 타 지역에까지 기독교의 영향력을 죽이려 했던 것이었는데, 바울의 무죄판결로 그 효과는 되레 기독교에게 긍정적으로 끼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의 사역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있는 오늘의 이 장면은 사실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해서부터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바울의 입장에서 고린도에서의 선교여행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있어 제한된 상황들을 하나하나 여시면서 결국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흘러가는 것을 온전히 이루고 계셨다. 생계유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에베소에서 후원금이 들어왔으며, 동역자들과 합류함에 따라 말씀에 집중해 본격적으로 복음을 선포했고, 반유대주의 정서로 인해 어려움이 가득했을 때 환상을 통해 격려하시고,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무죄판결 그 이상의 긍정적인 결과를 얻음으로써 이방 땅에 복음이 더 넓게 퍼져나갈 수 있는 틀을 마련하신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모습인가?

 

중요한 것은 이 당시 바울에게 임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이다. 혹시 지금 경제적으로 꽉 막혀 있는 삶 속에서 다음 날이 오는 것을 두려워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직장 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지쳐버린 삶의 수레바퀴 가운데 아무런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혹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관계가 막히고, 하루하루 눈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매정하고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버텨내자. 인내하고 또 인내하자. 오늘 고린도에서 바울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어나가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고 계시는 중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의 좁디좁은 시선으로 볼 때 현실이 마냥 암울해 보이기만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통해 그분의 뜻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고 계신다. 복음이 땅 끝까지 이루어나가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니 끝까지 인내하자. 주님께서도 끝까지 인내하셨다. 더러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음에도 살아내셨다. 그의 피조물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셨는데 참아내셨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음에도 그들을 용서하시고 마침내 부활하셨다. 주님께서 끝까지 참아내신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그 모습 앞에서 감히 그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하루하루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그 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


"거룩하신 주님, 끝까지 참고 인내해낼 수 있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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