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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장 18-23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18장 18-23절

텔레울로스 2018. 6. 29. 14:48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1. 관찰: 본문 요약
본문은 바울의 2차 여행이 마무리되어지는 시점에 와있다. 고린도 법정에서 일을 치룬 바울과 그 일행은 고린도에서 잠시 머물러 형제들과 작별인사를 한 후, 수리아로 떠나갔다. 이후 에게 해로 넘어가기 전 겐그레아에 잠시 들렀는데, 이 때 고린도에서 동고동락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함께 동행했다. 겐그레아 도착한 바울은 그동안 하나님과 맺었던 개인적인 서원에 대해 감사함으로 잘 마무리하고 머리를 깎았다. 이후 에베소에 도착해 부부를 정착케 하고 자신은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변론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바울을 더 머물게 하고자 했으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거든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며 급하게 에베소를 떠나고자 했다. 아마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로 가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그는 교회에서의 볼 일을 잘 마무리 한 후, 안디옥을 거쳐 갈라디아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면서 동역자들을 격려하며 굳건하게 했다.

#2. 해석: 본문 연구
2차 선교여행 중에 있던 바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여기는 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5:18과 요 20:30에 의하면 성경에서 그 어떤 글자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8절도 동일하다. 고린도에서 에베소를 가기 위해 잠시 들렀던 겐그레아, 바울은 그곳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어떠한 이유로 저자는 바울의 머리 깎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가? 예수님은 생전 살면서 머리를 깎지 않았기에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다만 저자가 굳이 저렇게 기록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18절에 보면 그 이유가 나와 있다. 바울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서원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의 서원은 거룩한 땅에서 해야 하는 공식적인 서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서원이었을 것이다. 한 신학자는 그 서원이 고린도 사역 전체를 통해 해를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존된 것이라고 추측하며 그의 머리 깎는 행위는 감사의 행위였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바울은 녹록치 않았던 선교여행 가운데 하나님과 맺은 서원을 기억하며 감사했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1절을 보면 그가 급하게 에베소를 떠나는 장면이 그려진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비록 에베소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남아주기를 청했음에도 바울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던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진 공동체적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전자는 개인적인 서원에 의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공동체적 약속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바울은 선교여행을 다니던 중에 하나님과 맺은 개인적, 공동체적 서원과 약속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갔다. 비록 유대인이나 복음을 더 알기 원했던 자들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그에게 있어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이러한 모습은 바울 뿐 아니라 예수님께도 보여 진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병고 고침 받고자 했음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시고 기도하셨다(5:16).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던 것이다.

#3. 적용 및 결단
이러한 바울과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하루하루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름의 우선순위와 각각의 이유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교회에서 나름 섬김의 자리에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것저것 매일 경건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봉사활동을 하며 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교회는 20-30년 동안, 심지어 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지만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하냔 말이다. 교회만 다닌다면, 경건생활만 잘하면, 선한 일을 한다면, 율법을 잘 지켜낸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좋은 것인가? 분명 삶의 행태를 볼 땐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내 삶을 변하지 않고 계속 세상 가운데 허우적거리며 평안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혹시 지금도 그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린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바울이 하나님과의 서원을 잊은 채 선교여행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기만 했다면, 선교여행을 다닌답시고 유월절 지키는 것 마저 소홀히 했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친다고,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 사역을 하셨다면 어떠셨을까?

우린 살면서 착각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나름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것이 맞을 것이라는 착각. 이렇게 하면 될 것이라는 착각. 하지만 그 누가 그것이 맞다고 한 것인가? 그 기준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기준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포스트모더니즘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순간 우리는 착각을 착각이라고 분별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정작 하나님과의 관계는 깊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기도한 번 하면 그 관계는 건강하다고, 이게 바람직한 신앙생활이라 생각을 한다. 정작 하나님과의 관계는 깊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예배만 참여하면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자신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성경 그 어디에 그런 말이 쓰여 있는 것인가?

착각하지 말자. 오해하지 말자. 스스로 기준이 되지 말자.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형성이 되어야 되는 것이다. 우선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임을 깨달을 때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찾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바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루하루 자신의 더러운 모습으로 괴로워하는 자,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음을 깨닫는 자이다.

혹시 지금도 자신의 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 전도한다고, 성경 읽는다고, 기도한다고, 주일 예배 한 번 참여한다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스스로 돌아보자. 과연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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