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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장 37절 - 22장 1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21장 37절 - 22장 1절

텔레울로스 2018. 8. 2. 07:37

37.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1. 관찰: 본문 요약
에베소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바울은 구원투수 천부장의 등장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군 영내로 압송되고 있었다. 도착할 때쯤 바울은 천부장에게 말한다. 당신에게 한 가지 말을 해도 되겠소?” 여기저기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정중하게 말하자, 천부장은 놀라서 오히려 되묻는다.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때로부터 약 3년 전, 애굽의 한 모험가가 예루살렘에 나타나 스스로를 선지자라고 주장하면서 수많은 추종자들을 감람산으로 데려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명령 한 마디면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질 것이기에 로마의 수비대를 뚫고 진격해 그곳을 차지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많은 추종자들에게 소망을 품게 했었는데, 유대 총독 벨릭스에 의해 군대가 패하자, 그는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이에 천부장은 바울을 도망간 그 애굽인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정중하면서도 담대한 투로 자신에게 묻는 바울을 보며 놀랐던 것이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누군지 밝히며 다시 한 번 천부장에게 부탁한다. 나는 유대인으로,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오.” 바울은 착각했던 천부장의 생각을 바로 잡아줬으며, 피투성이에도 자신이 다소라는 로마의 대도시 출신임을 당당하게 말한다. 특별히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다소를 말할 때 대도시라 말하지 않고, ‘소읍이 아닌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비슷한 말인 듯 다른 이 표현은 출신지를 강조하려는 바울의 의도와 더불어 그가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곧이어 그는 다시 한 번 천부장에게 부탁한다.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해주시오!” 여기에서 청컨대라고 쓰인 단어는 간청하다. 기도하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만큼 간절히 부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덧붙여 허락하라는 단어 또한 명령어의 형태로, 자신이 압송되어 왔음에도 아주 강력하게 요청하는 담대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정중하면서도 담대하게 요청하는 바울의 모습에 놀랐는지, 천부장은 그가 원하는 바를 거절치 아니하고 다 들어준다. 이에 바울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사람들을 조용히 하게 한 후 히브리어로 말한다. 신약학자 F. F. 브루스에 의하면 이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는 계 9:11, 16:16을 제외하고 히브리어라고 번역된 곳은 모두 아람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그의 주석에서 밝힌다).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아람어를 구사해 성난 유대인들을 조용하게 만든 것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아람어가 유대인들에게 있어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해석: 본문 연구
바로 이전 본문에서 사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나눴다면,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과 천부장의 대화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섭리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하나님의 섭리 그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사실 오늘 본문도 바울이 마지막 사명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의 한부분이다. 특별히 뒤이어 다룰 행 23:11은 이를 명확하게 증명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짧은 과정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디테일한 준비인데, 크게 5개의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천부장이다(37, 39). 앞서 말했듯이 천부장은 이미 바울에게 있어 구원투수와도 같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또한 상당히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기록상 바울이 정중하게 부탁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란의 중심에 있던(아직 로마시민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그의 부탁을 모두 받아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번째는 바울의 헬라어 능력이다(37). 일단 바울이 헬라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점에서 천부장과의 대화가 가능했고, 많은 호의를 받을 수 있던 것이었다. 특별히 바울의 언어구사능력은 이미 말했듯이 수준급이었던 것 같다. 그의 과장법이나, 정중한 말투는 천부장의 마음은 움직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세 번째는 바울의 출생이다(39). 당시 출신지역에 따라 사람을 평가, 판단하는 문화가 아주 도드라졌는데, 바울이 태어난 다소라는 도시는 당시 로마에서 교육의 메카라 불릴 만큼 대도시였기에 바울의 이력에 한 줄을 크게 긋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바울은 최고의 학문가라 불리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을 했던 자로,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에서 교육을 받은 말 그대로 엘리트집단 출신이었다(22:3). 천부장은 이러한 그의 이력을 듣고 바울을 쉽게만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번째는 지혜이다(40). 천부장에게 연설을 허락받은 바울은 성에 차 로마군을 쫓아온 유대인들을 조용히 시켰다. 특별히 브루스의 말에 따라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서 아람어를 구사했다는 것은 상당히 지혜로운 처사였다. 가뜩이나 성나 있던 유대인들이었기에 바울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거나 계속해서 말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고함과 고성을 질러댔었는데(34), 그는 이러한 상황을 알고 그들이 듣기 편한,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로 연설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그의 언어능력으로 보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것이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담대함이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옆에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로마 군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앞에는 자신을 죽이려 눈에 불을 켠 유대인들로 가득했다. 누가 봐도 이 상황은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것이 정상이며, 혼란스러움에 정신을 못 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다. 그는 정신 차리고 아주 정중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천부장에게 자신이 뜻하는 바를 요청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연설을 시작하려 했다.

이처럼 바울과 천부장의 대화 가운데 드러난 5개의 요소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로마에 보내시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시키셨는지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한 사람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해 학업, 능력, 지성, 인격, 그리고 만나는 사람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하나하나 세팅을 하신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가? 이 얼마나 완벽하냐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시면 그것은 곧 현실이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것은 바로 지금이 된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3. 적용 및 결단
그러니 기억하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삶 또한 하나님의 완전하고 완벽한 계획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비록 우리가 생각할 때 지금 자신의 상태, 경제 상황, 고난, 스펙, 계획 모두가 불안정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또한 우리의 이성을 넘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을 뿐이다. 갖춘 것이 없어 항상 부족하다고만 생각되는, 그로 인해 불안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지금 이 모습은 하나님의 준비케 하심의 한 가운데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두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가운데 부모님이 잡았던 자전거 뒷부분을 놓았을 때,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식욕과 각종 정욕을 제어하며 참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자, 그리고 기억하자. 지금 우리가 겪은 이 모든 현실은 준비의 한 과정 일뿐이다.

비록 삶의 모든 과정을 다 겪으려면 아직 한참 남아있지만, 그 끝에 무엇이 있음을 우리는 알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두 팔 벌려 우리를 환영해 주시는 예수님과 그 뒤에 펼쳐진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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