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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2장 2-21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22장 2-21절

텔레울로스 2018. 8. 2. 22:20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1. 관찰: 본문 요약
본문의 흐름은 아주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변명하는 바울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천부장의 호의로 유대인들 앞에 선 바울은 1절에서 말한 것처럼 변명을 시작한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의 과거 이력(3-5), 주님을 만남(6-16), 사명을 받음(17-21).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바울은 먼저 자신의 출신에서부터 스펙(?!)들을 특징 있게 말한다. 그의 이력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 다음으로 그는 주님을 만났던 그 순간들을 열거한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던 그가 주님을 보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음으로(14), 증인이 된 것이다(15). 그렇게 변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성전에서 다시 한 번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사명을 받는다. 비록 유대인들이 방해로 이야기가 중간에 끊겼지만, 어쨌든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그의 간증은 여기까지였다.
내용을 정리해보면 바울의 변명은 자신의 간증이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21:27-28에 대한 변명을 한답시고 자신의 간증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오늘 분문은 간증 그 자체에 초점을 갖추기 보다는, 그가 간증을 행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2. 해석: 본문 연구
사실 그의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서 거짓 증언했던 에베소 유대인들의 말에 대해 바울은 변명을 하고 있었다. 거짓 증인들의 말은 무엇이었나? 바울이 백성, 율법, 성전을 비방했으며, 이방인을 성전 안으로 들였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아주 명쾌했다. 그것이 바로 3-5절이다. ,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출신과 스펙, 열심을 한 번 들어보시오! 그 누구보다 유대인이었소, 유대인 중에서도 유대인이었던 말이오. 그런 내가, 거짓된 자들이 말한 것처럼 행동했겠소?” 그렇다. 분명히 형태는 간증이었지만, 바울은 자신의 과거 이력을 밝힘으로써 유대인들에게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물음을 갖게 된다. 3-21절까지의 이 긴 이야기 속에서 변명이 단 세절에 불과했다면, 이어지는 긴 내용은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인가? 이 질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지금 변명 이외에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은 변명을 주된 목적으로 그 자리에 서있던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무엇인가를 전하려는 목적으로 연설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한 답은 본문과 동일한 내용이 담겨 있는 사도행전 26장에서 추측 수 있다. 26:29은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간증을 한 후, 간절함을 담아 말하고 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후에 알아볼 테지만 바울이 간증하는 바는 오직 한 가지 때문이었다.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본문을 바라봐야 한다.
바울이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혔던 이유는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율법에서 말해온 아브라함의 참 자손은, 예언자들의 약속을 상속받을 참된 유대인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율법의 외형만을 잘 지킨다고 구원의 약속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만난 자가 진짜 구원받을 자란 말입니다.” 비록 유대인들에게 두들겨 맞아 온 몸에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바울은 그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낭떠러지로 직진하는 그들이 너무 불쌍해서 자신의 간증을 통해 진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떤 건지 말해주려 했던 것이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목적이었다. 간증의 목적이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아마 그는 로마군들에게 들려 호송되는 그 가운데에서조차 하나님께 간구했을 것이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그렇게 그는 성령께서 주신 지혜로 명분뿐인 변명의 자리를 요청했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 했다(20:24).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드는가? , 바울이니까...”라고 생각되는가? 아니면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세리와 같은가? 종교개혁자 칼빈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놀랄이만큼 열렬한 사랑이다. 한 점의 탐심도 방해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는 사랑이다. 사랑의 원칙에 어긋나는 자극은 바늘 끝만 한 것이라도 허락하시지 않는다.” 칼빈이 말하는 하나님의 요구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충족시킨 자가 바로 바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엇을 하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창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만 하는 가장 모범적인 모습일 것이다. 한 번 우리들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보자. 이번 한 주 우리는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했는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 했는가? 무엇 때문에 가슴이 설렜는가? 무엇을 가장 많이 갈급해 했는가? 부끄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예수 그리스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2, 3순위에는 있을까? 아마 보기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슬프게도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 시대 기독교의 현실이란 말이다.


#3. 적용 및 결단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앉아만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변명만 할 것인가?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스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나의 마음가짐이나 상태가 아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해야 할 것은 변명이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것은 오직 하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오직 그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14:6). 그러니 바울처럼은 못할지라도, 칼빈의 말처럼은 못할지라도 최선을 다하자. 무엇을 하던 그 시작과 끝이 주님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와야 할 단어가 주님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선포해야 할 단어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적어도 이것이, 바울의 고백(고전 15:10)처럼 우리가 은혜를 입은 자로써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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