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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2장 22-29절 본문

묵상

사도행전 22장 22-29절

텔레울로스 2018. 8. 7. 08:28

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29. 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1. 관찰: 본문 요약
천부장의 호의로 많은 유대인들 앞에서 행해진 바울의 간증은 어느 시점에서 끊기게 된다. 이는 듣다듣다 안되겠다며 소리 지르는 성난 유대인들 때문이었다. 모함으로 이미 편견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바울은 유대교와 성전을 비난한 이단아에 불과했다. 이에 그들은 바울을 없애 버리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옷을 벗어 집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던짐으로 극도의 분노를 터뜨렸다. 유대인들의 이런 극심한 반응을 보고 있던 천부장은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 심문을 통해 이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라고 명한다. 이에 백부장을 비롯해 로마군인들이 바울을 묶고 채찍질을 가하려는 그때, 바울은 폭탄선언을 한다.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이 말을 들은 백부장은 놀라 천부장에게로 달려가는데, 천부장 또한 백부장의 말을 듣고 놀라 오히려 바울에게로 달려가 다시 한 번 상황을 확인한다. 하지만 바울의 당당한 고백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로마법을 어긴 자신의 모습과 상충되며 두려워했다.

#2. 해석: 본문 연구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의 2가지 상반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22절에서 복음을 듣다못해 고함을 친 유대인들이 했던 말을 살펴보자.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둘 자가 아니라 여기에서 이러한 자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자이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자라고 직접적으로 밝히기 보다는 그냥 복음을 전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 사건 또한 간증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는 목적 하나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쏟아진 말은 세상에서 없애 버려야 할 자, 살려둘 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뒤이어 보이는 유대인들의 반응은 이를 더 격하게 강화해준다. 바울의 첫 번째 신분은 복음을 전하는 자이다.

바울의 또 다른 신분은 25절에서 언급된다. 로마 시민 된 자 이번엔 앞에서 살펴본 것과는 다르게 의도적으로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그랬더니 주변에 있던 로마군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였던 백부장도, 천부장도 먼저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엄습한 것은 바로 두려움이었다. 이들이 두려워했던 이유는 바로 로마법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로마 시민만큼은 공회에서 죄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결코 죄인 취급을 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재판에서 죄인임이 드러났다고 해도, 피의자가 다시 한 번 상소를 하면 그 상소가 끝나기 전까지 또한 결코 죄인처럼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천부장은 지금 바울이 로마 시민인줄 모르고 구금하고 죄인 취급했을 뿐 아니라, 채찍까지 가하려 했던 것이다. 특별히 채찍질은 이방인들과 노예들에게만 해당되었지, 로마 시민에게는 아예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천부장은 더더욱 놀랐을 것이다. 만약 바울이 자신을 함부로 대했다고 역으로 고발한다면 그는 로마의 엄격한 법에 의해 사형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9절에서 천부장이 두려워했다는 이 표현은 마 14:30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청해 바다 위를 걷다가 바다에 빠질 때 느꼈던 두려움과 동일한 단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였을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처럼 본문에서 드러난 바울의 2가지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귀한 삶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복음 전달자, 하늘 시민으로서의 삶을 위해 로마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울처럼 2가지 신분을 함께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하늘 시민으로써의 신분, 두 번째는 이 땅에서의 신분이다(이 땅에서의 신분이라 함은 직장인, 아들, 아빠 등 각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의 위치를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하늘 시민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해 평생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말로만 그리스도인이라 떠드는 자들) 혹은 행동으로써(바리새인과 같은 행위주의자들) 드러내려하지 않고, 그에 합당한 삶을 묵묵히 살아냈다. 또한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과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드러내려 하지 않은 것은 당시 이방 지역에 -로마인정서가 강했기에 혹여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부담이나 거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시 로마 시민으로써의 권리조차 포기한 채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반대로 (오늘 본문처럼)로마 시민으로써의 신분을 드러내려 했던 것 또한 복음 때문이다.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혀야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에 따라(23:11) 로마로 가 복음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울은 하늘 시민으로서의 신분 때문에 이 땅에서 자신의 신분을 주장했다. 자신이 이러하고 저러하고를 굳이 밝히려고 했던 것은 오로지 하늘 시민으로써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기 위함 때문이었다. 그에게 이 땅에서의 신분은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 앞에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았을 수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하늘 시민으로서 신분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로마 시민으로서의 삶을 위해 하늘 시민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어떤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영혼을 위해 얼마나 말씀을 보고 있는가? 내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얼마나 기도의 시간을 드리고 있는가? 주변의 불우이웃을 위해 얼마나 물질을 드려봤는가? 전도를 하기 위해, 혹은 교회에서 섬기기 위해 주말의 쉬는 시간을 얼마나 드리고 있는가? 선교를 하기 위해 현재 진행형의 삶을 잠시 내려놓은 적이 있는가? 아니, 생각이라도 해본 적이 있기는 한 것인가? 과연 이 질문들에 얼마나 대답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지금 하늘 시민의 신분과 이 땅에서의 신분, 어느 쪽에 더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지를 살펴볼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3. 적용 및 결단
그렇다. 우리는 아직이 땅에 메여 있기 때문에, 하늘 시민으로서의 신분보다 로마 시민으로서 신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고려치 않은 발언해 불과하다. 비록 우리의 본성은 죄성의 지배 하에 로마 시민으로서의 삶을 주장하려 한다 해도,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면 바울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간구해야 한다. 모든 은혜의 수단(말씀과 기도)을 활용해 내 안에 성령의 충만을 바래야 한다. 인간은 결코 자신의 능력만으로 하늘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낼 수 없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만이 우리의 본래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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