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oulos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본문
보편성이냐 전문성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세상을 ‘지식’이라는 키워드로 분류해 설명하려 한다면, 얼마나 방대할까? 어떤 기준이냐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조차 셀 수 없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과연 시도는 할 수 있을까? 아니, 시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 시도에 따른 답이 어떠한 논리를 가질 수 있을까? 본서는 이미 그 고민에 대해 답을 찾고, 이를 설명하고, 이를 논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다룬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본서의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교양 교육이다.
본서는 제목과는 다르게(?!) 교양의 가치를 논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교양에 대해 정의하고 현대의, 특별히 일본 최고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대의 현실을 폭로하듯이 교양 교육의 부재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두 가지 차원에서 자신의 정의를 말하는데, 그중 한 축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 의미, 즉 사람들과 어떠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생활 지식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식이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현저히 부족할 뿐 아니라, 대학의 최고 기관마저도 이 부분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전문성만 강조하는 현 교육 체계와 그에 따른 폐해를 함께 말한다.
교양의 또 다른 축은 역사성으로, 그간 인류 가운데 쌓여온 지식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지식들이 이 세상에 쌓여 오늘까지 왔겠는가? 그런 점에서 시대가 변한 만큼 과학기술이 발달하기에 교양이라는 단어의 폭이 변하는 것도 사실인데, 이를 계속해서 자산으로 붙들며 다음 세대에게 내려보내는 것 또한 하나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보니 단기라 할지라도 도쿄대에서 강사로 지냈던 그에게 있어 교양 교육에 대한 현 교육시스템에 더더욱 안타까움을 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비록 저자가 말하고 있는 교양 교육의 부재는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도쿄대라는 한 교육기관에 한정하지만, 일본이라고 하는 국가의 위상과 도쿄대라는 대학의 수준을 두고 볼 때 본서의 무게는 상당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부는 비평적인 시각으로 현황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여러 의견 혹은 서적들을 참고하여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본서를 독자 각 개인에게 적용해 본다면, 이 시대 전문성을 더 개발함으로써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쌓여온 그 지식을 다음 세대에 흘려보내야 하는 책임과 이 시대를 아는 삶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교양에 대한 (보편적 측면에서의)깊이 또한 필요함을 먼저 인정하고 알아가기를 애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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