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86)
Teleoulos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는 '인본주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하나의 반증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심리학 서적들과 그에 따른 뜨거운 반응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넘어 민감하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이라 하여 민감한 사람들을 위한 서적이 따로 출판되었겠는가?(아마도 보다 전문적인 서적들이 더 많을 것이다) 오늘은 '민감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고민해보려 한다. 민감함이라는 단어는 그저 세 글자이지만, 정말 복잡한(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표현에 한정)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그 사람마다 민감함은 다 다를 것..
수련회 이후, 휴가, 휴가 이후 또 수련회?! 역시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맞다. (더 성경적으로는 주님 밖에 모른다가 정답일 것이다) 정신없이 달려갔던 수련회, 그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휴가, 휴가 이후 학교의 개학으로 인해 다시금 준비해야하는 교목의 일정. 그런데 갑자기 초등부 여름성경학교가 내 앞으로 떡 하니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말이다... 뭐, 상황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게 교회를 위해서도 맞다. 단 이틀의 시간 속에서 준비해야 하는 수련회, 지난 중등부수련회 때 한달 여간 그렇게 준비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상황적 구조였다. (물론 준비하는 정도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하심 가운데, 정말 교사 + 섬김이들의 애씀으로 수련회는 잘 마..
수련회 이후, (상황상 어쩔 수 없이)바로 이어진 여름 휴가. 휴가라면 모름지니 푹쉬며 잠시 복잡한 일상을 떠나 있는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많은 고민과 정리를 하다온 느낌이다. 그것도 아직 끝나지 않은 정리, 또르르... 그래도, 그 가운데 주님 주시는 깨달음으로 하나하나 되돌아 보았다. 사실 말이 '되돌아 봄(내지 성찰)'이지, 대다수 나의 연약함을 두고 심도깊이 반성하는 시간이라 함이 맞을 것이다. 냉정하게 지난 1~7월까지의 사역을 두고 볼 때,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점수는 10점 만점에 1점 정도가 될 것이다. 그만큼, 분명히 많은 것들을 해왔지만 결과적으로 남는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아니, 조금 더 진솔하게 말한다면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을 해왔던 것이다. (...
사람마다 인생의 위기는 찾아온다. 그리고 그 위기는 사람마다 여러 방법을 통해 이겨내기도, 통과하기도, 그냥 흘러가기도 한다. 최근 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이 위기는 이미 이전에 경험했기에 너무 당혹스럽고 충격이라기보다는, 더 큰 영향력으로 찾아왔기에 굳이 '위기'라고 표현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무엇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쪽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진솔히 말해서 내 문제는 기껏해야 2~3이라고, 상대방이 7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에 터진 '현상'에 한정해선 그게 맞다. 분명 문제가 문제로 터진 것은 상대방 측이 선을 넘은 것이 맞기에.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이번에 터진 이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결코 근..

내가 사역자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많이 구하는 게 있다면 아마도 '긍휼'일 것이다. "주여,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이고 간구하는 건지, 이젠 기도만 시작하면 습관처럼 나오는 표현이 될 정도이다. 특별히 오늘, 왜 이렇게 이 단어가 내게 필요한 건지. 1) 교역자 수련회 이번 년도 교회를 세워나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원 팀'이었다. 그만큼 그동안 하나되지 못했고 그러하기에 이번 년도 준비는 교회적으로 필수적이었다. 그러다가 첫째날 진솔한 나눔 속에 교역자들끼리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조의 주장이었고, 그렇게 난 총대(?!)를 메고 어제 나눴던 결론을 가감없이 표현했다. 나의 발언들은 함께 나눴던 동역자들에게는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면, 그 누군..
교회에 대한 고민을 논하면 항상 나오는 결론은 이것이다. "담임목사님" 결국 리더로부터 교회는 세워진다는 뜻이다. 이와 동일한 원리가 담겨 있는 공동체는 가정이다. 가정 또한 가장으로부터 공동체가 세워지거나 무너진다. 그러하기에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최근들어 가장으로써의 리더쉽에 대해 고민해본다. 나의 특정 부분에 있어 어려워하는 아내의 고백. 하지만 동시에 그런 아내의 고백으로 인해 생기는 남편의 반문. 결국 '누가 그랬고 그래서 이건 그렇다.' 끊이지 않는 논쟁과 불편함만 싸울 뿐이다. 누군가 말했다. 서로 티격태격해가며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맞는 말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 또한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case by case 이기에..
목회자에게 있어 설교는 가장 기본이자 핵심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종종 바쁜 사역으로 인해 물리적인 준비 부족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죄인과도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설 때가 있다. 또 어떨 땐 이미 고착화된 형식으로 준비하다보니 틀 안에 넣고 더 고민하려 하지 않아 하나님 앞에서 죄인과도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설 때도 있다. 또 어떨 땐 영/육의 지침으로 '이정도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적당히 준비해서 하나님 앞에서 죄인과도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설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더 철저히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하다가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노력으로만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낙심하여 멈추고 하나님 앞에서 허탈한 내 모습을 미워하다가 그 자리에 설 때도 있다. 그 외 사람..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처음으로 시작된 비대면 수요예배 오늘은 캐릭터 확실하신 동역자, 최목사님의 설교였다. 본문은 너무 흔하디 흔한 사사 삼손, 그리고 제목은 '머리털 신앙'이었다. 사실 아직 나에겐 쉽지 않은 영역의 대중적인 본문 설교. 오늘 설교도 본문만 두고 볼 때는 '뻔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집중하며 듣다보니.. 어느새 깊은 몰입감으로 푹 빠져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최목사님의 핵심은 결국 '머리털은 상징일 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사실 삼손은 들릴라와의 사건 이전에 나실인의 규례를 이미 범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가 어떠한 이유로 자신만만했고 여전히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결국 '머리카락'이 여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머..
곧 초등부에서의 구약설교도 이번 주를 포함해 2번 남았다. 모든 성경을 다 가르치고 선포하고자 하는 나의 교육관에 따라 신약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이상하리만치 산상수훈(팔복)에 대한 마음이 생기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갈망인 건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인지는 조금 더 디테일하게 살펴봐야겠지만 이미 참고서적까지 구매한 나에게 있어 이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여전히 어렵사리 초등부 설교에서 절별 설교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보다 '두려움'이 서려있음을 보게 된다. 1) 과연 내가 짧으면 20분, 길면 30분정도인 시간에 초등부를 향한 절별 설교를 할 수 있을까? 2) 무리가 아닌, 제자들을 향한 산상수훈이 이들에게 바람직할 것..
제일 바쁜 주일, 사역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나의 반쪽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근처 저수지를 다녀왔다. 원래 세살배기 체력이 이정도였나? 도무지 지치지 않는 아들, 지치는 건 나였다... 집으로 돌아와 쉴 틈 없이 아들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저녁 먹을 그때, 찬양이든 노래든 재미있는 영상이든 잠시 웃을 수 있거나 나름 생각없이 볼 수 있는 것들을 반찬으로 식사를 했을텐데 왠지 모르게 이끌려 갔던 검색어 '노진준목사님' 식사하는 시간이야 보통 10분 내외이기에 가능하면 짧은 설교말씀을 찾아봤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9분 가량의 영상. 사실 설교영상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설교영상의 엑기스를 따로 편집해 대본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