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일상 (86)
Teleoulos
여름 캠프가 끝난 이후 휴가기간동안 아내와 함께 찬솔이 곁을 지키다가 장모님의 배려로 아내와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우리의 일일데이트는 진즉에 계획된 대로, 뮤지컬 '벤허'를 관람하는 것!벤허라 함은 기독교 영화 중에서도 결작 중 걸장으로 꼽힐 뿐 아니라, 비신자 마저도 인정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필자 또한 예전에 한 번 봤던 것 같은데 그 내용이 전연 기억이 나지 않아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줄거리만 확인해보았다.그렇게 서울에 도착해 아내와 분위기를 낼 겸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시간에 맞춰 B스퀘어에 도착!아내가 나름 신중하게 알아보고 좌석을 선정했으나, 발을 넓게 뻗을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음향시설이 그닥 좋지 않았던..어찌되었든 간에, 오늘만큼은 아내를 위한 시간이니 웃는 얼굴로 ..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기독교를 잔인한 종교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26년의 목회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내려놓음과 비움은 도구일 뿐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내려놓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높여드림이며, 비움이 아니라 (그리스도로)채움입니다. 행복은 관계의 문제이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상황이 어떠한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비록 지금의 그 자리가 고난의 자리일지라도 우리는 지금 생명 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
오랜만에 생일을 맞이하여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포스터와 같이)“신은 죽지 않았다3” 포스터만 봐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한 줄의 문장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영화이다. 사실 내 노트북에 1편이 있음에도 그동안 보지 않고 미뤄두었다가, 생일을 기념(?!)한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함께 3편을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간 것이다. 이 영화는 기독교방송국인 CBS에서 수입&배급을 맡았다. 영화를 보고 온 이 상황에서 알게 된 것은, 개봉 4일차임에도 이미 전편의 최고관객수를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나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이 영화가 종교영화임에도 많은 대중들에게 있어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물론 그 관객들 중에 불신자들이 있는지 알..
아프다. 이 한 문장이 지금 나의 심정이며,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사역을 내려놓은 지 언 5개월 되어가는 지금까지, 사역을 통한 깨달음을 누릴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동역자들의 사역이야기를 듣게 하심으로 간접적으로나마 깨달음을 주고 계셨다. 안타깝지만 동역자들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대다수는 나에게 있어, 아니 우리들에게 있어 반면교사로 삼을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그래, 사역자를 떠나 나름 긍정적인 사람이기에 어떤 이야기라도 나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려 노력하곤 했다. ‘그래서 하나님, 여기에서 저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답을 못 찾을 때는 하나님께 여쭙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것조차 너무 힘들다. 왜냐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미리..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 주말이 흘러 룸메와 함께 저녁 외식을 하게 되었다.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며 지난 주에 있었던 삶을 나누었다. 나보다도 더 다이나믹했던 룸메의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며 웃기도, 공감하기도, 슬프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속에서 내게 던져졌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사역자가 교회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 이 질문은 한 때 내가 계속해서 붙들고 지냈던 고민이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사역자는 지난 날, 오직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헌신하겠다고 결단한 자들을 말한다. 나 또한 동일하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부르셨기에 그만큼 사역자로써의 행복 또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었고,..
전도사 나부랭이? 아침부터 한 학부모가 동역자 전도사님을 보고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의 종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래, 세상에 정말 다양하고 특이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렇다 치자, 과연 주의 종으로 살아가는 전도사들이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같은 전도사로써 살아가는 자로, 이 말 한 마디는 이른 아침부터 성경을 보는 나의 집중력과 정신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주의 종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예수님의 노예로써, 예수님께서 하라는 것을 그대로 하는 자를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도사는 마냥 낮아지고 맞춰주고 엎드려야만 하는 것인가? 어디까지 낮아지고 맞춰주고 엎드려야하는 것인가? 성도들이 원한다면 원하는데로 항상 들어만 줘야..
다시 한 번 방문한 성남의 모 교회, 오늘도 역시 본당에 들어설 때부터 밀려온 감동의 물결이 예배가 시작되자 가슴을 적셨다. 예배 시작 내내, 그리고 예배가 끝난 이후에도 찬양팀의 찬양을 통해 은혜의 도미노가 이어졌다. 도대체 이 교회에 흐르는 은혜가득한 흐름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그 근원은 역시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교회의 어떤 모습을 본 것일까? 물론 이러한 질문이 자칫 잘못하면 인간의 공로의 사상과 맞물릴 수 있다는 조심성을 가지고 생각해본다. 몇 개월동안 고민하면서 오늘에서야 내린 결론은 '담임목사'의 모습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서 교회 또한 어떤 모습이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비록 연약한 인간이기..
학교 사정상, 수요예배 드리는 것이 제한되어 있기에 개인적으로 말씀을 들으며 스스로 살고자 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레미야 33장 1-3절로 우리가 기도에 관해서 많이 들었던 말씀이다. 사실 어떤 말씀을 들을까 고민하다가.. 눈에 딱 띄었던 제목이 이거였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무튼 이러한 제목이었던 것 같다.) 목사님께서 기도를 두고 '그리스도인의 무기'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안타깝지만 한국교회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그리고 각종 문제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했다는 잘못보다도 기도라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얼마나 찔리던지, 교역자로써..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흔히들 이렇게 간구해봤을 것이다. "주여 나를 통하여 ⋯..
노스포인트 교회 이야기에 이어 다시금 시작된 교회에 대한 고민어떤 교회가 가장 성경적인 교회인가?어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인가?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는 곳?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곳?(장소의 개념을 끌어와) 은혜가 흘러넘치는 곳?여러 제도적인 것을 넘어 영적인 부분까지 충분히 생각해보자.어떤 교회가 과연 교회다운 교회인가? 개인적으로 어떤 교회가 더 교회다운 교회인지 고민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나는 안양에 있는 한 교회와 성남에 있는 한 교회, 이렇게 2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한 교회는 본당에 들어서면 조용하면서도 정돈된, 활력이 넘치기보다는가볍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무거운 분위기가운데 어느정도 긴장감이 흐른다면,다른 한 교회는 본당에 들어설 때 아늑하면서도 평안한, 들어서기만 해도 위로가 되며 은혜..
일전에 제자훈련 아이들과 함께 눈물로 관람했던 뮤지컬 요한계시록, 감사하게도 앵콜공연이 생겨 오늘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관람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 관람을 한다는 것보다는 사실 여자친구와 함께 본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이 끝났을 때 내 마음가운데 들었던 생각은, 두번째 관람하게 하신 것 또한 역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뮤지컬을 관람하고 지금 언 6시간정도 되었음에도 O.S.T 라 할 수 있는 찬양이 아직도 내 가슴에, 귓가에 맴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그대여 어서오세요" 어느 순간 그리스도의 재림을 잊어버린 채 살아온 어리석은 내 모습을 보며 과연 나는 사역자인가,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과연 자격조차 있는 가 의심하지 않을 수 ..